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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느낀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양국민들이 바라보는 바람직한 역할 모델(role model)에 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너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니?” 라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광개토대왕” 같은 분을 든다.

반면 미국에서 “너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묻는다면,

과거의 위인들도 물론 많이 포함되지만,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같은 현존하는 인물들도 의외로 많이 포함된다.

물론 현존하는 사람의 공과를 동시대의 사람이 모두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차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짧고, 그만큼 한국의 역사가 길다는 측면을 반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그러한 미국인들이 부럽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있어,

누군가 믿고 따를만한 역할 모델, 멘토, 존경할만한 선배가 이 시대에 부족하기 때문에,

몇백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인물에게서 역할 모델을 찾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패기가 없다,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바라보며 “믿고 따를만한 모델이 없다”고 외친다.

동시대의 젊은이들은 실패한 기성세대들을 향해 멘토가 없고, 믿고 따라갈만한 사람이 없다고 외친다.

어떻게든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는 기성세대의 성공 지상주의는 IMF를 거치면서 이미 바닥을 드러내었다.

풍요 속의 빈곤은 더욱 커져만 갔고, 무한 경쟁 속에서 너도나도 내 자식만큼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하며 사교육 시장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철학이 없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 뿐의 금자탑을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은 동시대의 어른들이 아닌, 대물과 같은 드라마를 바라보면서 열광하며 거기에서 자신의 역할 모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좌] 나를 지으신 주님

안녕하세요,

워십 기타 바이블 추가 강의 “나를 지으신 주님” 업로드합니다.

[새 창에서 열기 – 네이버]

[새 창에서 열기 – Vimeo]

일단은 조용한 핑거링 곡입니다. ^^ 중간 중간에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한큐에 그냥 찍다보니 실수가 좀 있네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a

악보도 함께 첨부했는데, 악보대로 할 때도 있고 즉흥적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일단은 악보대로 익히는 것을 중점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멜로디가 보컬 멜로디라인이랑 충돌하는 부분들도 있는데, 양해 부탁드릴께요. ^^ 실제 세션과 함께 연주할 때에는 멜로디라인을 빼고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1247396146.pdf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1.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요약하면,

“예배 때 사용되는 찬양에서 워십송과 CCM을 분리하고, 예배 때에는 복음의
전달에 적합하지 않은 매체를 사용하는 음악(락)과 CCM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듯 하다.

책은 락 그리고 CCM이 “나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예배 상황에서 쓰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도 이러한 주장에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 “세상과 교회의 가교가 되고자” 하는 CCM의 역할에는 동의하나, 교회 내에서
CCM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차고 넘치지 않는다는 점은 비교적 명백하다.

락 음악적 요소가 교회 내에서 더욱 심해지게
되면 그것이 복음의 전달을 방해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동의한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2.

예배 때 사용되는 찬양곡에 대한 더 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나도 어느정도 동의한다.


넋두리”와 큰 차이가 없는 찬양,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의 가사를 가진 찬양,

가요와 큰 차이가 없는
찬양,

혹은 말씀 짜집기로 만들어져서 주제의 통일성이 없는 찬양,

그리고 지나치게 모호한 가사의 찬양들이
단지 “음악성이 좋고, 분위기가 고조된다”는 이유만으로 예배 때 사용되는 것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동의한다.

3.

책에서는 “스타 찬양인도자”가 된 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 역시 이분들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이분들도 본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작과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딘가 찬양 인도자의 올바른 포지션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동시에 찬양 인도자가 전체
예배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무언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4.

저자가 말하는 원론적인 말들에 대해서 분명 이해가 가고 수긍하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는 현장에서 직접 찬양인도를 해 본 경험자는 아니며, 또한 매주 직접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저자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웬만한
찬양인도자, 설교자보다도 훨씬 풍성한 인사이트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몇 가지 부분에 있어서 균형이 부족하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먼저, 예배 때 다루어야 할
“주제”와 “중심”에 대한 차이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자 중요한 주제이다. 그것을 오도하거나, 혹은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은 분명 올바른 설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에 십자가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것도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교 때 “십자가”를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정말 그것만이 전달할 메시지라면, 단순히 성경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 설교가 끝나도 되는 것은 아닌가? 설교자가 필요가 없지 않는가?

굳이 설교라는 형식을 비는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주관이 어느정도 반영됨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십자가 외에도 기독교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말씀을 듣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며, 십자가는 그것의 “시작”이지 “주춧돌”이지, 그것만이 전부이자
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5.

또 다른 하나는 음악 스타일에 대한 부분이다.

과연 락을 예배 음악에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인가? 저자는 락의 주된 특징으로 싱코페이션의 과도한 사용, 오프
비트, 후렴의 반복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락 내에도 무척 많은 서브 장르들이 존재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음악
스타일에도 많은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드럼이나 베이스 비트만 하여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다.

게다가 락을 제외한 음악에서도 싱코페이션, 오프 비트, 반복된 후렴등이 쓰인다. 이 둘의 경계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큰
범위에서 뭉뚱그려서 “락”이라고 칭하는 것이지, 사실 그 내에서도 수많은 변형들이 있을 수 있으며, 가사 내용의 전달성 vs.
음악적 전달성 측면에서 그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게다가, 음악은 듣는 사람의 환경, 익숙함의 정도, 경험, 취향 등에 따라서 확연히 다를 수도 있다!

처음
듣는 음악의 경우에는 음악의 멜로디나 강렬한 드럼 비트에 끌릴 수도 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사의 내용이 더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곡은 듣는 사람에게 있어서 확실하게 “락”으로 들릴 수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을 뭉뚱그러서 “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스타일로 종합하고, 그것을 교회 내에서 제거하자고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분명 음악 스타일이 찬양곡의 메인이 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또다른 한 가지는, 음악이 가지는 “감성을 업시키는” 효과에 대해 우리가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성과 감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균형있게 함께 가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성이
자동차의 핸들링이라면, 감성은 자동차의 엔진이라고 보면 된다. 이성이 방향을 결정한다면, 감성은 속도를 결정한다.

감성만을 너무 앞세운다면 그것은 눈감고 운전하는 자동차와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된다. 반면 이성만을 너무 강조한다면,
방향은 올바르나 그것을 붙들고 나갈 감성적 결단은 약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는 하나님의 소중한 창조물이며,
함께 붙드는 것이다.

찬양은 분명 이성보다는 상당히 많은 감성을 좌우하는 행위이다.

올바른 방향이 없이
감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다. 그것은 제목 그대로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기독교”이다.

하지만, 올바른 이성의 방향이 제대로 잡혀있다면, 감성을 강화시켜주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도 하고, 눈물도 흘릴 수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 하나님께 가깝게 나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를 들었을 때 “마음의 뜨거움”이 없다면, 내가
죄인이라는, 그래서 부끄럽다는 “감성”이 없다면 우리가 회개를 할 수 있을까?

7.

그럼에도 책에서는 몇 가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찬양 인도자들이 회중들이 부르는 찬양곡들의 가사와 그 의미에 대해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많이 불리는 찬양이, 반드시 올바른 찬양은 아니다.

8.

책에서는, 찬양 곡들에는 “나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곡이 있고,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곡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보다 엄밀히 분류하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전자를 “Praise”, 후자를 “Worship”이라고 부른다.
(반대였었나?)

그리고 “Praise”에 해당하는 곡들을 예배 때 지나치게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Worship”곡이라 하여도 그 가사 내용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모호한 찬양곡은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배곡의 분류와 선별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 번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을 듯 하다.

Q.
찬양의 목적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심도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배에 대해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찬양을
드린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것은, 찬양의 주체가 “나”의 감정에 대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예배 안에서 찬양이 차지해야 할 올바른 위치는 무엇일까?

Q. 자신이 아는 찬양곡 중에
하나님보다는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초점을 두고 있는 곡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Q. 가요와 별반 차이가 없는
찬양에는 어떤 곡들이 있을까?

Q. 위와 같은 곡들을 포함한 “Praise Song”들은 아예 사용되지 않아야 할까?
만약 사용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 쓰여야 할까?

Q. 그렇다면 “나 자신”보다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있는 찬양에는 무엇이 있을까?

Q. 모호한 가사와
반복적 전달로, 복음에 대한 흐린 이미지를 주는 찬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Q. 콘티를 짤 때, 메시지 측면에서 별
의미가 없는 “채워넣기 곡”(Filler Song)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Q. 가요적 성향이 지나치게 강한 찬양에는 무엇이 있는가?

Q. 반복적인 후렴 전달은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가?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Q. 모호한 가사는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가?
그렇다면,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유는?

9.

책에서는 CCM의 올바른 위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나 역시 CCM이 “세상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들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실제적 현실을 반영하면 그렇다.

전자의 시각은, “세속”과 “교회”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시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CCM의 올바른 위치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이원론적 세계관부터 극복해야 한다.

책의 마지막에 언급되는 일원론적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 뿐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도 영광 받으신다. 헨델의 “메시야” 뿐 아니라, 베토벤의 교향곡으로도 하나님은 영광 받으신다.
그러한 면에서 CCM의 정의는 더 넓어질 수 있다.

어쩌면 교회 내에서의 가장 큰 적은 아직도 남아있는 이원론적
뿌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은 “세상”과 “교회”로 구분하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교회에서만 써먹어야지 하는 이원론이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이원론에 대한 극복은, 꼭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342-343]

10.

제대로 된 CCM이 한국에서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나도 공감한다. 대부분의 찬양곡들의 수요은, 찬양 인도자와 찬양팀을 위한 것이며,
회중들이 예배 때 부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CCM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11.

장르에 대해 좀 더 폭넓은 논의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사가 있지 않는 음악은 CCM에 속하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가 거부해야 하는 것인가? 이를 엄밀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12.

여러가지 면에서 생각할 부분들이 많은 책이었다.

다소 극단적인 부분들도 있고, 동의하기 힘든 부분들도 있었지만,
찬양팀에서 함께 읽고 예배 때 부르는 찬양곡들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과 나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동의가 가는 부분이다.


찬양 콘티에도 저작권이 있을까?

본인은 High Worship Online이라는 온라인 찬양 콘티 작성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까운 지인들만을 위한 사이트로 운영하고 있으나, 추후 정식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클로즈 베타를 거쳐 오픈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시기는 미정이나, High Worship Songbook 2011 이 예솔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출간될 때를 맞추지 않을까 싶다.

찬양 콘티를 publish 하는 사이트를 준비하는 입장으로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찬양 콘티”에도 저작권이 있을까 하는 점이다.

찬양 콘티는, 찬양 곡들을 특정한 주제 혹은 의도를 가지고 모은 연속적인 목록이다.

단어 하나하나에는 저작권이 없지만 그것을 모아서 문장 및 문단으로 만들고 책으로 만들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콘티는 어떨까? 찬양 곡들을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늘어놓은 것이 찬양 콘티일진대, 저작권이 있을까?

본인의 생각은, 일차적으로는 “No” 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 찬양곡들의 일차적 저작권이 해당 곡의 저작권 소유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찬양 콘티는 2차적 창작물로 보는 것이 옳으며, 이는 저작권법에 따라 1차적 저작권자의 허용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제한적으로 원 저작자의 허락 하에 콘티의 저작권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원재료가 되는 찬양곡이 타인의 것인 이상 원천적 저작권은 존재하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Ubuntu 10.04에 AWstats 설치하기

아파치 웹로그를 분석하는 툴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webalizer입니다.

webalizer보다도 좀 더 강력한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AWstats 인데, 이를 우분투에 설치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의 문서를 참조하였습니다. : http://ubuntu-tutorials.com/2008/01/16/configuring-awstats-on-ubuntu-server/

1. 패키지 설치

다음 명령어로 먼저 awstats를 설치합니다.

sudo apt-get install awstats libgeoip1 libgeoip-dev libgeo-ip-perl

2. conf 파일 수정

각 virtual host 별로 conf 파일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host 명을 domain.tld 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새로 config 파일을 하나 생성해줍니다. 저의 경우에는 localhost로 명명했습니다.

sudo cp /etc/awstats/awstats.conf /etc/awstat/awstats.domain.tld.conf

그리고 생성된 파일을 수정합니다.

sudo vi /etc/awstats/awstats.domain.tld.conf

이 때 수정할 항목으로는

  • LogFile=”/var/log/apache2/access.log”
  • LogFormat=1
  • SiteDomain=”domain.tld”
  • HostAliases=”www.domain.tld localhost 127.0.0.1″

위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GeoCity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데이터파일을 직접 다운받아 설치합니다.

wget
http://geolite.maxmind.com/download/geoip/database/GeoLiteCity.dat.gz  (위의 줄까지 한 줄입니다)
gzip -d GeoLiteCity.dat.gz
sudo mv GeoLiteCity.dat /usr/share/GeoIP

또한 GeoIP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다음 라인을 활성화 시켜고, GeoIP.dat 파일 경로를 적어줍니다.

  • DNSLookup=0
  • LoadPlugin=”geoip GEOIP_STANDARD /usr/share/GeoIP/GeoIP.dat”

추가적으로 GeoCity 정보를 활성화하려면 아래 라인을 활성화시켜줍니다.

  • LoadPlugin=”geoip GEOIP_STANDARD /usr/share/GeoIP/GeoLiteCity.dat”

3. apache 설정

저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awstats.conf 파일을 새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sudo vi /etc/apache2/conf.d/awstats.conf

파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Alias /awstatsclasses “/usr/share/awstats/lib/”
Alias /awstats-icon/ “/usr/share/awstats/icon/”
Alias /awstatscss “/usr/share/doc/awstats/examples/css”
ScriptAlias /cgi-bin/ /usr/lib/cgi-bin/
ScriptAlias /awstats/ /usr/lib/cgi-bin/
Options ExecCGI -MultiViews +SymLinksIfOwnerMatch

저장하고, apache를 재시작합니다.

sudo /etc/init.d/apache2 restart

4. 과거 로그 파일 처리하기

저의 경우에는 logrotate가 설치되어 있기에, 과거 gz로 압축된 로그들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명령어를 통해 간단하게 과거의 로그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awstats는 가장 마지막으로 parse된 파일 이후의 것만 처리하기 때문에 과거 로그를 먼저 import 한 다음에 최신 로그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4번 단계를 먼저 하고 5번 단계를 하시면 되며, 과거 쌓인 내역이 없거나 분석하기 원치 않으시는 경우에는 바로 5번 단계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cd /var/log/apache2
gzip -d access.log.*.gz
sudo /usr/share/doc/awstats/examples/logresolvemerge.pl access.log.* >> access_combined.log
sudo /usr/lib/cgi-bin/awstats.pl -config=localhost -LogFile=”/var/log/apache2/access_combined.log”

아마 초기 업데이트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5. 업데이트

최근 로그(access.log)는 아래와 같은 명령어를 통해 업데이트 가능합니다.

sudo /usr/lib/cgi-bin/awstats.pl -config=domain.tld -update

이를 아래와 같이 crontab 에 등록시켜두면 매 시간마다 자동으로 로그를 바탕으로 업데이트하게 됩니다.

6. cron에 등록

sudo crontab -e

그리고 아래 내용을 등록합니다.

0 * * * * /usr/lib/cgi-bin/awstats.pl -config=domain.tld -update >/dev/null

7. 확인

위와 같이 모든 셋업 과정이 끝납니다. 웹브라우저에서 아래 주소로 접속하면 됩니다.

http://domain.tld/awstats/awstats.pl

저의 경우에는 도메인 이름을 localhost로 등록해서, 아래와 같이 접속해야 했습니다.

http://domain.tld/awstats/awstats.pl?config=localhost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서의 악보집의 미래

예전에 온라인 상의 콘티 작성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비슷한 컨셉의 서비스가 이미 상용화되어 있다:

http://www.worshipplanning.com

http://www.planningcenteronline.com

Planning Center Online 같은 경우에는 iphone 인터페이스를 지원하는 ㅎㄷㄷ한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아직 국내에는 온라인 콘티 작성조차도 활성되지 않은 형편이지만, 벌써 해외에서는 모바일 물결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악보집의 발전사를 세대별로 정리해보자면,

1세대 – 책 형태의 악보집

2세대 – CD 프로그램 형태의 악보집

3세대 – 인터넷 상의 악보집

4세대 –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서의 악보집

과 같은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국내에서는 2세대까지가 활성화 된 단계이고, 미국 등 해외에서는 3~4세대까지 활성화가 된 상태이다.

그리고 4세대의 도래를 가능하게 할 도구로는, 역시 애플의 iPad를 들 수 있다.

애플의 iPad와 같은 기기는 컨텐츠 중심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iPhone이 다소 작은 화면 때문에 악보집 및 콘티 작성에 필요한 기능을 모두 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iPad는 훨씬 더 넓은 화면으로 쾌적한 콘티 작성을 가능하게 한다.

Cellvic 및 PocketPPC로 이런저런 어플을 작성해 본 경험이 있는지라 모바일 프로그래밍에 대해 대충은 알고있다. 그 시절에는 불편한 인터페이스 때문에 사용자 친화적인 프로그램 설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애플 iPhone이 불러운 혁신으로 인해 좀 더 사용자가 다가가기 쉬운 모바일 컴퓨팅이 가능해졌다.

다만 문제는 악보 저작권 업체들과의 관계이다.

현재의 악보집 산업 구조에서는 아직 악보 저작권 업체들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여기에 부여된 각종 조건들 때문에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형편이다. 당장 악보 다운로드만 해도, 악보를 구매한 이후 7일간만 다운로드가 가능하게 하는 등 제약 조건들이 많다.

게다가 미국의 CCLI 처럼 일원화된 곡 관리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소 중구난방 식으로 흩어져 있다보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일단은 저작권 업체들의 공통된 인식이 제일 중요할 것 같다. 이러한 공통된 합의 아래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악보집 서비스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왜 사는가?”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통해 결론내린 인간의 존재 목적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은 1643년 7월 1일부터 1648년 2월 22일까지 영국의 장기의회가 영국 웨스트민스터에 소집한 성직자들과 의회원들의 유명한 전국적 회의에서 작성되었다.

처음에 상원의원 10명, 하원의원 20명, 그리고 성직자 121명이 소집되었으나, 후에 결석자들을 보충하기 위해 21명이 추가되었다. 수년에 걸쳐 지속된 이 회의들의 평균 출석수는 60~80명이었다.

소집된 인사들은 각각 감독교회, 장로교회, 독립교회, 에라스투스 제도를 대표하였으나, 1643년 영국과 스코틀랜드 양국간에 ‘엄숙한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이 서명된 후 감독교회 인사들이 물러가고 출석자의 대다수는 장로교파였다. 독립파와 에라스투스파로 인한 끊없는 논쟁은 회의 진행을 1644년 말까지 지연시켰다.

결국 1646년 12월 3일에 신앙고백서가 의회에 제출되었으며, 의회의 지시에 따라 1647년 4월 29일에는 각 명제에 대한 성경구절 주석이 첨부되었다. 그 뒤를 이어 소요리문답은 1647년 11월 5일에, 대요리문답은 1648년 4월 14일에 보고되었다. 이 문서들은 영국 의회뿐만 아니라 완성되는 대로 스코틀랜드 총회가 비준했다.

그러나 크롬웰 군대에 의해 의회가 예속되자 곧 장로교 목사들이 축출되었다. 그는 강제로 장기의회를 해산시켰으며, 그에 따라 위원회는 해체되었다.

미국의 처음 지방노회가 1729년에 이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채택해으며, 이 문서들은 스코틀랜드와 영국과 아일랜드와 미국의 모든 장로교회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국가적 교회에 대한 견해를 거부했던 미국의 지방노회는 신앙고백서 제20장, 제23장, 제31장 등의 일부를 수정했다. 이렇게 변경되고 수정된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이 미국 장로교회 교리 부분이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위원회는 처음에 신앙고백과 요리문답들을 동시에 준비했으나, 얼마 진행한 후 우선 신앙고백서를 필하고, 그것을 표준으로 삼아 요리문답들을 작성하기로 결의했다.

1646 년 12월 3일에 완성된 신앙고백서를 회의의 이름으로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는 그 각 부분에 성경구절을 난외(欄外)에 방주(傍註)를 달라고 지시했다. 회의는 마침내 각 명제에 대한 성경구절을 완전히 첨부해서 1647년 4월 29일에 의회에 보고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의의는?

장로교의 신학적 근거는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요약한 것이 “소요리문답”으로서 다루는 대상은 매우 광범위한데, 그 첫번째 질문과 대답이 인상적이다. 소요리문답에서는 인간의 존재 목적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소1.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는 질문에 대해 내린 가장 명쾌한 답이자, 크리스천의 신앙 원리와 핵심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삶의 목적을 다른 무언가를 이루는 것으로 정의하곤 한다. 인간은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으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그것이 때로는 전도, 혹은 선교라는 이름으로 치환되기도 하고, 직업적 소명으로 귀결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은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삶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나오는 부차적인 산물일 뿐이지, 삶의 목적 그 자체는 아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일을 시키시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노예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자유인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죄 때문에 노동이라는 굴레를 부여하셨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 무언가 사명을 이루는 것 자체가 우리 인간의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충격일 수도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남자는 여자에게 자꾸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한다. 그럴때면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런거 없어도 네가 나 사랑하는 거 알아. 그냥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주고, 나로 인해서 기뻐해주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와 같다. 하나님을 위해서 너무 많은 “무엇인가를 해 드리려” 할 필요 없다. 하나님은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영광스러우신 분이고, 부족함 없으신 분이다. 그러니 그냥 하나님을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된다. 많은 것을 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냥 그 분의 존재를 영광스럽게 높여드리고, 그 분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의 목적이다.

거기에 비전, 삶의 목적, 소명, 그러한 말을 덧붙일 필요 없다. 그런 것 없어도, 단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즐거워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 인간은 이미 충분히 자신의 삶의 목적을 다 한 존재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첫번째 되는 질문이자 답변이다.

*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 대한 설명 참조 : http://www.nazuni.pe.kr/faith/creeds/westmin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