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올해의 책

올해 읽은 책은 총 355권이고, 212권은 완독, 143권은 중도 하차했다. 여러 권으로 된 시리즈물 책까지 포함하면 실제 권수는 조금 더 많을 것이다.

  • ★★★★★: 46권
  • ★★★★✩: 118권
  • ★★★✩✩: 141권
  • ★★✩✩✩: 50권
  • ★✩✩✩✩: 1권

아래는 각 분야별로 내가 꼽은 베스트 책들이다.

소설

히페리온, 히페리온의 종말

각자의 사연을 지닌 여섯 명의 순례자들이 소원을 품고 “히페리온”이라는 행성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설정, SF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낭만적이고 탄탄한 문체,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스, 종교와 상징, 사랑과 희생 등 극적인 요소들이 군상극이라는 형태로 결합된 훌륭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지난 10년간 읽었던 SF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고, 이 책을 최근에야 읽게 되었다는 점이 후회되었다. 처음 50페이지 정도가 약간 읽기 어려울 수 있는데, 자세한 배경 설명없이 소설에 툭 던져진 느낌이 있다. 초반 부분을 지나면 걸작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과학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제목만을 보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무슨 말이지? 하면서 책을 읽다보면 마지막에 제목의 뜻이 풀리게 된다. 무척 독특한 논픽션 과학 에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생물학 그리고 진화론에서 흔히 접하기 쉬운 오류, 즉 “어느 한 종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나 “진화는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사다리처럼 이루어진다”는 개념이 왜 위험한지를 설명한다. 책은 이를 위해 마블 영화에나 나올법한 독특한 과학 빌런 (!) 데이비드 조던의 생애와 업적, 살인 의혹, 그리고 우생학 옹호자로서의 흑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성소수자인 저자 본인의 삶과 함께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점이 인상적이다.

경제

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기업의 회계 관련 부서에서 일하거나, 회계 관련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상 일반인들이 회계를 접할 기회는 사실 흔치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기업, 그중에서도 주식회사의 발명에 있어서 회계가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이 책은 복식 부기에서부터 주식회사의 등장과 SEC, GAAP의 등장, 듀퐁 공식과 ROI, 그리고 관리 회계에 이르기까지, 회계사의 굵직한 발명들을 다루고 왜 이런 회계 기술들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풍부한 배경 역사와 함께 쉽게 설명한다.

역사

역사 삼국지

오랫만에 재미있게 읽은 삼국지 역사서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원작 <삼국지연의>와, 역사 속의 “정사”로 알려져 있는 진수의 <삼국지>가 어떠한 시대 배경에서 쓰여지고, 어떻게 실제 역사를 “뒤틀어서” 보여주는지를 설명한다. 즉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어떤 부분들이 극적 재미를 위해 추가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정치적 이유로 왜곡되거나 삭제됐는지 알 수 있다. 삼국지 팬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

정치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무엇이 보수와 진보의 지향점을 가르는지, 은유의 언어가 어떤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은유가 정치와 종교에서 왜 그토록 많이 사용되는지를 연결하는 훌륭한 사회심리학 도서이다. 나는 좋은 책이란 많이 생각하게 만들고, 많이 질문하게 만드는 책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도 유명하다. 조지 레이코프와 그 제자인 웨일링이 대담 형식을 통해 인지신경학이 정치적 프레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대담 형식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

사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사나운 늑대를 다정한 개로 만들고, 소와 말 같은 야생동물들을 가축으로 만든 원동력은 바로 가축화(domestication) 때문이다. 하지만 가축화가 인간에게도 일어난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이 책의 핵심적 주제인 “인류의 자기 가축화 가설”이다. 이 책은 동물행동학, 진화심리학, 사회심리학의 여러 분야들을 폭넓게 넘나들면서, 자기 가축화 가설을 심도 있게 풀어낸다. 즉 사람이 누구나 길 잃은 아이를 도와주려 하고, 고통받는 어린아이에 감정을 이입하는 친화력을 가진 이유는 자기 가축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화력에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정치 양극화, 양당제의 폐해, 극단주의의 부상을 친화력 때문에 집단간 관계가 악화되는 역설적 사례로 흥미롭게 설명한다. 이 책은 내가 2022년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던 책 중 하나였다.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

인문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은 인생의 마지막 여정인 죽음에 관한 책이다. 말기암 환자가 불필요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말기암 환자에게 소생술을 해야 하는지, DNR (do not resurrect) 동의서는 무엇인지, 사회 시스템은 죽음에 대처하기 위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등등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의사의 역할도 다루고 있는데, 항암 치료가 이미 불필요해진 상황에서는 단순히 사실과 정보만을 나열하면서 결정을 환자에게 미루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이 실제로 어떻게 변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는지, 환자에게 공감하면서 이야기해주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을 읽으면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또다른 과정이자 관문이라는 사실을 환자와 의사가 함께 이해하고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자기 계발

Never split the difference

인질범이 내 가족 2명을 유괴해서 몸값을 요구한다고 해보자. 어떻게 인질범과 협상해야 할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이른바 “절반 협상 전략”, 즉 내가 원하는 가격이 50이고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이 100일때 점점 격차를 줄여 나가다가 마지막에 75에 이르는 협상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절반만 돈을 주고 한 명만 데려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찰의 유괴 인질 협상팀에서 네고시에이터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저자가 직접 알려주는 협상법 책인데, “절반 협상 전략”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낼 수 있는 협상 기법을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내서 내가 원하는 해답을 얻어내는 방법부터, 기업의 협상, 자동차 딜러와 차 가격 협상, 그리고 자녀들과의 노는 시간 협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흥미로운 예제와 함께 다루고 있다.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

종교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지났다. 이 책은 지난 500년을 성찰하고 개신교의 역사, 한국 기독교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는 3부작이다. 책의 구성이 알차고 심도있다. 나는 종교 개혁이 단순히 교리 다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와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 민중들의 뒷받침이 있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고, 그런 지점에서 오늘날 일반 시민들의 뒷받침을 얻지 못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를 조망하는 부분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논픽션

노마드랜드

2021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마드랜드>의 원작 논픽션 작품이다. 떠돌이 이주 노동자들이 2008년 부동산 붕괴로 직업과 집을 잃고 RV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자리를 찾아 미국 각지를 유랑하는 사연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판 유목민인 이주 노동자의 삶을 깊고 직접적으로 다룬다. 이주 노동자들이 아마존 창고에서 “캠퍼포스” 프로그램으로 일하는 모습, 높은 경쟁률을 뚫고 캠핑촌 관리자로 일하는 사연, 비싼 치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멕시코에 다녀오는 이야기 등 숫자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개개인의 삶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암울하게만 묘사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긍정적인 시선과 희망도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단순한 사회 고발서 이상으로 만든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 원작이 훨씬 낫다고 느꼈다.

예술

관계의 미술사

창조는 제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동료들간의 경쟁, 질투, 그리고 경합을 통해 서로에게 도전받고 영향받고 변화하면서 생겨난다. 이 책은 미술사의 획을 그은 유명인들 중에서도 에드가와 마네, 피카소와 마티소, 그리고 루치안 프로젝트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그들의 내밀하고 복합적이었던 친밀함과 질투의 관계를 폭로하며,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예술 사조를 만들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최근에 읽었던 예술사 책 중에서 가장 심도 있고, 인간미가 있는 책이었다.

올해의 책

히페리온, 히페리온의 종말

2022년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은 역시 히페리온. 가히 SF 의 금자탑이라고 부를만하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