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ML5+CSS web application building blocks

HTML5+CSS web application building blocks.

<fundamentals>
    □ jQuery.js : simplifies selecting and modifying selecting DOM objects.
    □ Prototype.js : Javascript framework
    □ backbone.js : enables rich web applications(like Gmail) on front-end side with MVC model.
    □ underscore.js : adds functional programming language features.
    □ LAB.js : on-demand javascript loader.

<template>
    □ handlebars.js : template engine
    □ mustach.js : template engine

<server-side script>
    □ node.js : server-side javascript.
    □ phantomJS : webkit console program

<javascript compiler>
    □ coffeescript : little language that compiles into JavaScript

<css>
    □ SASS : extendable and hierarchical css sheet.

<mobile support>
    □ iscroll : enables ipad/iphone ready scroll interface to web.
    □ zepto.js

<unit testing>
    □ jslint : javascript code quality tool
    □ Qunit : javascript test suite
    □ Ready.js : tool to prepare your javascript files for production

<Ruby integrated>
    □ Jammit : asset packaging library for Rails

Holstee Manifesto

Holstee 의 기업 사명문(Manifesto) :

이것은 당신의 인생이다.
사랑하는 것을 하고, 자주 하라.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라.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만 둬라.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TV를 그만 봐라.

당신 삶 속에서 사랑을 찾는다면, 멈춰라.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분석하려 들지 마라. 삶은 간단하다.
모든 감정은 아름답다.
무언가를 먹는다면, 마지막 한입까지 즐겨라.

새로운 것과 사람들에게 당신의 정신과, 양팔과, 마음을 열라.
우리 모두는 다양함 가운데 하나되어 있다.

자주 여행하라. 길을 잃으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회들은 오직 한번만 찾아오니, 꼭 붙잡아라.

삶은 곧 당신과 만나는 사람들이자, 그들과 함께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가서 만들기를 시작하라.

인생은 짧다.
당신의 꿈을 좇아 살고, 당신의 열정을 나누라.

원본 주소 : http://shop.holstee.com/pages/about

이렇게 간지나는 기업 사명문도 흔치 않은 것 같다.. 나의 삶은 무엇일까?

남자는 인생으로 시를 쓴다

남자는 운전하고 가다가 길을 잃어도 여간해선 중간에 차 세우고 물어보지 않는다. 아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완전히 첩첩산중, 오리무중에 몰릴 때까지 일단은 이를 악물고 가 본다. 자존심 때문이다. 몰라도 쉽게 모른다고 해선 안 되는 그 남자의 자존심 때문이다. 그게 남자 가슴 속에 숙명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나?

물론 그 고집이 때로는 대박을 터트릴 때도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사실 인도를 찾아 나서가 위해 길을 떠난 것이었다. 그런데 미 신대륙을 발견해 버렸다. 왜 거기까지 다다랐을까? 그건 중간에서 멈추고 남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 남자의 고집 때문이었다. (미국의 조크이다)

자존심으로 사는 남자의 본능적으로 투사의 불꽃이 이글거린다. 남자는(인텔리요, 엘리트라 해도) 모두 싸움을 잘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모여 앉으면 항상 자신들의 무용담(?)을 상당히 과장해서 떠벌리길 좋아한다. 입으로는 폭력이 나쁘다 하면서도 은근히 조폭 문화를 힐끗거린다. 아버지 세대는 존 웨인과 게리 쿠퍼, 386 세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소룡, 성룡을 흠모하며 컸다. 스포츠도 건강을 위해,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하고 이기기 위해, 스코어 보드가 울리는 그 순간의 쾌감을 위해 미친 듯이 몸을 던진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늘어나도 상관하지 않고 무모하게 달려든다. 이길 수만 있다면 남자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개의치 않고 웃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1등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승자는 하나뿐이다. 한 명의 찬란한 승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패자들이 쓸쓸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야만 한다. 일류 리그가 안되면 이류, 삼류라도 가서 내가 대장이 되어야 한다. 세계와 경쟁하는 것이 두려우면 개방을 주저하고 나라의 문을 꼭꼭 잠가는 수 밖에 없다. 일류 앞에서는 꼼짝 못하다가도, 이삼류들 앞에 가서는 목에 힘주고 뻐기는 이중적인 모습, 그것이 우리네 남자들 아닌가?

그러나 남자의 마음에는 늘 안개 같은 아픔이 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남자, 강해지고 싶어 하는 터프한 사나이들도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혼자 조용한 곳에 가서 한없이 울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무시당하기 싫어 죽으라고 뛰어온 세월들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졌을 때는 다시 질 것이 두렵고, 이겼을 때는 계속 이기지 못할까봐 두렵다. 누르는 선배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더 무섭다. 능력이 없어 아내와 자식들을 남 앞에서 비참하게 만들까봐, 직장에서 그 어떤 수모를 당해도 참고 참는다. 말로는 민족의 운명과 대의를 논하면서, 현실에서는 식사비 조금 아끼기 위해 벌벌 떠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한심하다. 그러다 속병이 든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남을 이겼는데, 왠지 모를 양심의 소리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아내 아닌 여자를 사랑해 보기도 하고, 며칠씩 전화를 끄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탈출해 보기도 한다. 흘러간 옛 팝송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오래도록 창 밖을 내다본 적이 없는 남자가 있을까?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야심찬 남자의 인생, 그러나 정작 그 성공의 고지에 다다랐을 때 밀려오는 공허감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비해 놓지 못했다. 속도가 최고인 줄 알고 뛰었는데, 이제는 아차, 방향을 잡아야 함을 느낀다. 인생 전반전에서는 이겼는데, 이기기 위해 치른 대가가 너무 컸고, 받은 상처가 너무 많다. 원래 챔피언들에게는 친구가 없다. 자기는 친구 하고 싶어도, 사람들이 너무 커져 버린 그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내 사람을 만들수록 적들도 늘어간다. 군중 속의 고독이 갈수록 현실이 되어 들이닥친다. 이럴 때 옆에 있어 주어야 할 아내와 자식들은 그들이 한창 남편이나 아빠를 필요로 할 때 철저히 무시당했던 까닭에 이미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남자는 무엇을 위해 인생을 올인해 왔던 것인가?

다윗의 삶은 바로 그런 우리네 남자의 삶이다. 같은 남자지만 반할 만한 무수한 장점과 매력을 가진 사나이, 수려한 외모, 화려한 군 경력, 타고난 음악가이자 시인이었고 도망자 생활을 거쳐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파란만장한 사나이였다. 그가 지은 죄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실수하고 넘어져도 언제나 겸손히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손을 잡는 다윗을 끝까지 지켜 주셨고, 축복하셨다.

내가 다윗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실수 많고, 잘 넘어지며, 영혼에 늘 고난의 짐을 짊어진 남자이기 때문이다. 압도하는 카리스마보다는 말없는 미소와 홀로 흘리는 눈물이 더 많았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치명적인 죄도 짓고 실수도 많이 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늘 넘어지고 실수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공감을 느낀다. 성공도, 실패도, 칭찬도, 비난도, 배신의 아픔도, 진한 우정도, 불같은 로맨스도, 목숨을 건 전투도, 교활한 인간들의 모함도 그는 다 겪었다. 그의 인생은 위대한 리더의 삶을 그린 위인전이라기보다, 우리와 똑같은 한 남자 이야기다.

그의 시 하나하나도 화려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불 같은 가슴으로 구구절절이 녹여낸 울부짖음이요, 거짓 없는 고백이다. 그런 다윗을 보면서 나는 무릎을 치며 경탄했다. “남자는 인생으로 시를 쓰는구나” 평생동안 변치 않고 24시간 하나님과 접속했던 까닭에 그는 그토록 멋진 왕으로 역사에 남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인생으로 시를 쓴다” 中 — 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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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정리해 둔 책의 내용이다. 나중에 나도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루고 성취한 것들이 아닌, 나의 진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를 원한다.

100704 최근 근황

연구(Charles Kilian) + 연구(Peter Waddell) + ITaP 일 + 악보집 인쇄 작업 + HighWorship Songbook 2011 작업 + 음악 작업 + 교회 사역 + …

등의 무한 크리로 정신이 없음.

몸을 하나 더 만들고 싶다..

[팁] Cubase 5 에서 transport panel이 사라졌을 경우.

가끔 큰 모니터에서 작업하면서 Cubase 5의 Transport Panel을 아래로 밀어둘 때가 있다.

문제는, 이것을 다시 불러왔을 경우 Transport Panel이 아예 아래로 내려가버리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면 해상도를 재조정하면서 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본인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결했다.

1. Cubase 5를 완전히 닫는다.

2. C:\Users\사용자이름\AppData\Roaming\Steinberg\Cubase 5\Default.xml 파일을 메모장으로 연다. (Windows vista / 7의 경우입니다.)

3. “TransportWindowController” 라는 항목을 찾는다. 그 아래를 보면 H와 V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 수치가 아마 마이너스이거나 V 혹은 H가 화면 해상도보다 큰 값일 것이다. 적절하게 수정해주자 (100, 100 정도로)

4. Cubase를 연다. New Project를 시작한다. 아마 Transport 창이 보일 것이다.

5. 이 상태에서 메뉴의 Windows > Workspaces > Organize 를 클릭한다.

6. 현재의 레이아웃을 저장한다. 오른쪽의 “New”를 누르면 현재 구성이 저장된다.

7. New project를 닫고, 열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연다.

8. 메뉴의 Windows > Workspaces > Organize 로 들어가서 아까 불렀던 구성을 불러온다. (“<” 버튼을 클릭하면 됨)

9. 그러면 Transport Panel이 아까 보았던 위치로 다시 복구될 것이다.

이 버그는 명백히 Steinberg 측에서 UI를 설계하면서 감안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차기 버전이 나올때는 이를 제대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주어야 할 것이다.

블로그 Open

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Naver, egloos 등 다른 여러 서비스들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제가 개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블로그가 제일 편한 것 같더군요.

앞으로 천리안 계정에는 태터툴즈 블로그, 자료 다운로드(10메가 넘어가는 파일 지원되는 곳이 여기밖에 없음) 등등을 세팅하여 사용할 예정입니다.

highworship.net 에서는 찬양 인도자 네트워크인 High Worship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 생각입니다. 사이트를 지나치게 홍보할 생각도 없고, 아는 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개하여 사용할 예정입니다.

천리안에 입주시킨 이 블로그는.. 아직 정확한 용도는 정하지 않았지만 제 개인적인 포스팅들, 신변 잡기, 기타 ordinary 하지 않은 자료들을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