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인도자에게 있어 가장 어렵고 힘든 일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콘티 작성을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힘든 이유는, 콘티 작성은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예술(Art)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년이 넘게 찬양 인도를 해 온 경험있는 찬양인도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콘티 작성은 쉽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속합니다. 경험과 기술이 쌓이면 전조와 브릿지 등과 같은 많은 기법들을 활용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색채를 담아 콘티를 작성할 줄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콘티 작성은, 마치 새로운 작품을 그리는 아티스트가 맞닥뜨리는 것처럼 신비롭고 난해하며 익숙하지 않은 일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콘티 작성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위해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것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녀를 감동시키기 위해 무슨 옷을 입고 나타날지, 어떤 선물을 할지, 어느 거리를 걸으며 어디서 식사를 할지, 모든 것 하나하나가 쉽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결정에 속합니다. 이는 오랫동안 교제해온 애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찬양 콘티도 마찬가지 입니다. 콘티 작성을, 하나님과의 공식적인 데이트 코스를 짜는 것으로 생각해 봅시다. 사랑하는 하나님과의 데이트를 위해, 그분의 깊은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18번 곡들을 넣을 수도 있고, 새로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듯 새로운 곡으로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신선한 곡으로 찬양할 수도 있고, 정동진에서 경이로운 일출을 함께 바라보듯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예배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은 분명 힘겹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힘들면서도 왜 한편으로는 기쁜가요? 그것은 평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연인들이 유사한 영화관에서 유사한 영화를 보고, 유사한 커피숍에 가서 유사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과의 만남도 유사한 예배당에서 유사한 교인들과 유사한 찬양을 부른다 할지라도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데이트는, 생산하고 소비되는 제품(product)이 아니라, 비슷해 보여도 모든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masterpiece)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는,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콘티 작성은 기술(technique)이 아닌 예술(art)입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적당히 찬양곡을 붙여가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를 준비하듯 작성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콘티 작성은 힘들고 익숙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오랫동안 찬양 인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졌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애인과의 만남이 익숙한 듯 하면서도 늘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그려나가야 하는 찬양 인도는 아무리 유사해 보인다고 해도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양 콘티에는 모방(imitation)은 있을지 몰라도, 복제(duplication)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찬양 콘티 하나하나가 독특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콘티 작성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기계적인 것이 되지는 않았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예배 인도는 익숙해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아직 예배를 준비할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남아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첫 만남, 그분의 임재를 처음 체험했을 때의 떨리는 설레임이 남아 있나요? 혹시라도 그 마음이 사라진 찬양 인도자가 있다면, 잠시 작성하던 콘티를 덮어둡시다. 큐 시트(cue sheet)와 리드 시트(leed sheet)도 치워둡시다. 데이트의 중심은, 바로 사랑하는 그녀 자체예요. 사실 그녀와 함께라면 영화관에 가든, 식사를 하든, 강변을 거닐든 수다를 떨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중요한건 누구와 함께 있느냐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닐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바로 사랑하는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광야이든 푸른 초장이든 관계 없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맷 레드먼(Matt Redman)의 Heart of Worship(예배의 중심) 은 이러한 예배자의 마음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명곡입니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의역을 해 보았습니다.
When the music fades All is stripped away
And I simply come
Longing just to bring Something that’s of worth
That will bless Your heart음악이 사라질 때 모든 것들은 벗겨져 버리고
저는 꾸밈없이 나옵니다.
다만 당신을 기쁘게 할
가치있는 그 무언가를 드리기 갈망하면서I’ll bring You more than a song For a song in itself
Is not what You have required
You search much deeper within Through the way things appear
You’re looking into my heart저는 당신께 노래 이상의 것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노래 그 자체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눈으로 보이는 것 속에 있는 훨씬 더 깊은 것을 찾으십니다.
당신께서는 제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I’m coming back to the heart of worhip
And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When it’s all about You It’s all about You, Jesus저는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께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 모두 당신께 대한 것입니다.
제가 예배의 중심인 것처럼 꾸며낸 것들에 대해서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모두 당신께 대한 것인데도, 예수님, 모두 당신께 대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좋은 악기도, 실력있는 찬양팀도, 심지어 찬양곡 그 자체도 아닙니다. 예배의 중심은 바로 예수님 당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명제를 잊고 예배의 주변 요소들이 마치 예배인 것처럼, 마르다의 모습으로 분주하게 예배를 드릴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예배 그 자체를 예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기타 교본을 마무리 하면서, 저는 기타 연주법의 중요성을 폄훼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많은 시간을 들여 찬양하고 연습하면서, 드디어 내가 원하는 찬양 곡을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무한한 기쁨을 느낌니다. 그럼에도 저는 기타를 잘 연주하는 것이 좋은 찬양인도자가 되는 것의 필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타 연주를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찬양인도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배 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에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배의 중심(heart of worship)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며, 이를 가슴속에 간직한 자들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작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당신이 그러한 예배의 중심을 가슴 속에 뜨겁게 간직한 찬양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당신은 이미 하나님 앞에 선 귀한 예배자입니다.
* 위의 글은 “예배 인도자를 위한 워십 기타 바이블”(예솔출판사,2009)의 마지막 장에 제가 쓴 글입니다. 아직도 찬양 인도자로서 서기에 너무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보니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예배를 준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