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추천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르 소설과 과학 서적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장르 소설
-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여섯명의 대학생들이 입사 면접을 위해 한 유망한 스타트업 회사에 모였습니다. 처음에 회사는 모든 지원자들이 합격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면접 전날 말을 바꿔 “합격자는 이 중 단 한명이고, 누구를 합격시킬지는 지원자들 스스로 결정하라”고 통보하면서 배틀로얄식 입사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와중에 지원자들 가운데 살인자가 있다는 협박성 고발문이 등장하면서 누가 협박범이고 살인범인지 서로를 의심하게 되죠. 중반부까지의 긴장감이 무척 좋은 편이고, 후반부에서는 청춘소설 및 성장물적인 요소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다만 초반부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스스로 합격자를 결정하라는 식의 지나친 무리수 설정, 그리고 진범의 정체와 동기가 작위적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 괴담의 집 (미쓰다 신조): 심리 호러 소설로 유명한 미쓰다 신조의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섯 가지 공포 괴담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요, 작품의 마지막에서 빠진 퍼즐 조각들을 채워나가며 다섯가지 사건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서 진상을 밝혀내는 전개가 무척 훌륭했습니다. 무서우니 밤에는 가급적 읽지 말기를 권합니다.
- 살인자의 쇼핑몰 (강지영):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주인공은 삼촌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삼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하지만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삼촌의 인터넷 쇼핑몰 창고를 노리며 수상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속에서 쇼핑몰과 삼촌에 얽힌 비밀이 하나씩 풀려갑니다. 강지영 작가는 한국 장르 문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분이지만, 저는 액션, 스릴러, 느와르가 하나로 합쳐진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캐릭터, 구성, 배경 등등 워낙 흡입력 있는 요소들이 많아서 단번에 끝까지 읽어버렸습니다. 드라마라도 나와 있는데요, 후반 부분을 제외하고는 각색이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액션 스릴러를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홍학의 자리 (정해연):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는 첫 문장이 대담하고 인상깊은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잘 조형되어 있고, 진상 자체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호흡이 무척 뛰어난 스릴러입니다. 마지막의 서술 트릭 반전이 인상적인데요, 개인적으로는 반전의 정체를 너무 숨긴게 아닌가 싶었고, 또한 반전 그 자체가 진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디 아더 유 (J.S. 먼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완벽히 기억하고 분간해내는 “초인식자”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초인식자를 주제로 도플갱어라는 오컬트적 요소를 흥미롭게 조합한 모던 고딕 스릴러 + 범죄 수사물 소설입니다. 사실 진범의 정체와 도플갱어의 진상은 이러한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을 것이고, 진범의 동기가 영 설득력이 부족한 점이 약점이기는 합니다만, 소설의 전체적인 호흡이 괜찮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붉은 강 세븐 (A.J. 라이언): 6명의 사람들이 보트에서 눈을 뜹니다. 한 명은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태였죠. 기억이 없는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지만, 멸망한 세계 속에서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게 됩니다.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릴러 + 호러 + 좀비물입니다. 도입부도 모범적이고, 중간중간 세계관의 비밀을 밝혀내는 완급도 좋은 편이며, 좀비물 특유의 긴장감도 잘 조성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물을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 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흔치 않죠.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 게임 매체 정도를 제외하면, 서사에 크게 의존하는 영화나 소설 같은 미디어는 훌륭한 속편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흔치 않은 예외에 속합니다. 작가의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모던 고딕 스릴러의 요소들을 갖춘 모범적인 스릴러라면, 이 작품은 전작을 뛰어넘은 매력을 보여주는 스릴러입니다. 헨리, 릴리, 조앤, 리처드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에서 오는 정보의 긴장감, 그리고 마지막의 장르적 쾌감까지, 장르 소설의 장점을 무척 잘 살려낸 훌륭한 스릴러입니다. 이 책을 보려면 전편을 꼭 읽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속작도 계속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해리 포터>가 봉준호를 만나면 무슨 작품이 나올까요?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일종의 유전되는 초능력인 “역장”이라는 설정을 통해 장기 밀매 시장과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도구로 만든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심너울은 워낙 유명한 SF 작가지만, 그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허무한이라는 캐릭터에게 서사와 변화점을 조금 더 부여하고, 서지현과의 서사를 에필로그에서 조금 더 마무리지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어반 판타지 + 블랙 코미디 소설입니다.
- 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일종의 코지(cozy) 호러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소설인데요, 이웃 사이의 괴롭힘, 어머니 모임 사이의 은근한 알력, 직장 내 괴롭힘 등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공포”와 어둠의 상황을 소재로 한 독특한 호러 소설입니다. 보통 이러한 공포 소설들은 주인공들이 줄창 당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이 아니라 퇴마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극의 활력과 캐릭터의 흥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즉 <파묘>처럼 조금 더 대중적인 호러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단편들이 모여서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구성이 매력적이고, 시리즈로 계속 나와도 재미있을법한 소설입니다.
-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임태운): 짜장면집에서 정체를 감추고 있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가울반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패러디한 <레어템의 보존법칙> 등 현실 세계에서 만날 수 있을법한 현실적인 배경이 매력적인 SF 단편 모음집입니다. 생동감있는 캐릭터와 유머가 좋았습니다. SF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일반 소설
- 사랑의 가설 (앨리 헤이즐우드): 재미있게 읽은 로맨틱 코미디 소설입니다. 다른 로맨틱 코미디 소설과는 다르게 대학원 박사과정 생활을 다룬 점이 독특했고,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궁상맞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가난한 대학원생의 생활, 그리고 가짜 데이트라는 로맨스 소설의 황금 공식을 잘 지켜내어서 단숨에 끝까지 읽게 만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다만 중간에 좀 야한 장면(!)이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읽으면 안됩니다. 또한 빌런의 캐릭터가 조금 아쉬웠는데, 그 점을 제외하면 캐릭터간의 티키타카와 케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가볍게 읽을 로맨스 소설을 원한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으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개브리얼 제빈의 신작입니다. 소꿉친구인 두 사람이 게임을 함께 만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른 청춘 성장물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유머스러운 문체, 잘 조형된 3명의 주연 및 조연 캐릭터들, 대화의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캐릭터의 성격과 매력 등등 구성의 정점에 서 있다는 인상을 받은 소설입니다.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거나, 관련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소 열린 결말에 가까운 결말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요, 청춘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 나를 찾지마 (김범): 주인공이 60대 할머니라는 점에서 독특한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재혼을 일주일 앞둔 환갑날, 1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면서 사건이 시작되죠. 장르를 특정하기 힘든 소설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가족 스릴러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플롯도 잘 구성되어 있고, 캐릭터들의 조형도 입체적이며, 등장 인물들의 변화 포인트도 잘 설명되어 있다는 점이 훌륭합니다. 남성으로서의 가장의 역할이 무엇일까라는 작품의 주제는 자칫하면 교조적으로 될 법한데도, 이를 튀지 않게 그려낸 솜씨도 훌륭합니다. 중간중간 플롯과 서사가 조금씩 튀는 지점들이 있지만,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분들이라면 가슴에 와닿을 지점들이 많은 소설입니다.
사회
- 친애하는 슐츠 씨 (박상현): 이 책은 미국 사회의 만연한 편견을 넘어 평등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노력했던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우리에게는 “스누피”로 알려진 유명한 미국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가 어떻게 작품에 최초로 흑인 프랭클린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운동을 잘 하는 마시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게 되었는지 책에서는 그 뒷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여자 옷에 주머니가 어떻게 달리게 되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도 이야기합니다. 편견과 차별은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생각이나 주장 혹은 가르침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죠. 한 사람씩 뜻과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모이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척 훌륭한 책으로,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가난이 사는 집 (김수현): 이 책은 판자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입니다. 조선시대 말기에 한국의 판자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시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리고 주택 재개발사업과 맞물려 어떻게 문제가 되었고, 어떻게 해결이 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훌륭한 책입니다. 한국의 재개발 모델이 세계 다른나라들의 사례에 비교해 보았을때 오히려 잘 정착한 모델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인류학
- 진화하는 언어 (모텐 H. 크리스티안센, 닉 채터):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생겨나고 변해 왔는지를, 독특하게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책의 가장 큰 핵심 주장은 모든 언어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발전해 왔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한 근거로 제스쳐 게임 (charades)을 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두 문명의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이런 “손짓 발짓”을 통해서 의사 소통을 전달하게 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죠. 그리고 점차 음성 언어가 사용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몇 단어들이 조금 더 높은 빈도로 쓰이게 되며, 동시에 단어들의 용례 확장과 변화가 일어나면서 언어가 점차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책의 핵심 내용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도,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사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류학 및 언어학 책을 좋아한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심리학
- 불륜의 심리학 (게르티 젱어, 발터 호프만): 왜 사람들은 불륜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왜 내연남보다는 내연녀의 숫자가 더 많은 것일까요? 이 책은 불륜이라는 미묘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심리학 책입니다.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왜 사람들이 불륜 관계에 빠져드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원나잇이 아니라 지속되는 관계가 되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탐구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불륜은 단순히 도덕과 가치의 문제라기 보다는, 생물학적, 사회 심리학적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그 근원 동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는 무엇이 더 불륜을 저지르기 쉽도록 취약한 지점으로 만드는지도 이야기하는데요, 결혼하신 분들도 한 번 읽어보시면 배울 점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 나라는 착각: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나”라는 자아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없던 자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더 복잡한 일들이 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 책은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 “자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두뇌가 우리의 인생 경험들, 사건들, 그리고 맥락들을 이어붙이고 편집해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점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 정신 분열증과 각종 사회학적 심리학적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뇌가 어떻게 단편적인 사실들을 서사로 재구성하며 해석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이야기”가 자아에 미치는 강력한 힘을 이야기하는데요, 마침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고 이 책을 읽은지라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역사
-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루크 키오): 이른바 “테라리움”으로 알려진 밀폐된 환경에서 식물을 기르는 상자들이 있죠. 신기하게도 물을 주지 않아도 물과 공기가 재순환되면서 식물이 잘 자랍니다. 이 책은 테라리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워디안 케이스”를 다룹니다. 우리가 손쉽게 마트에서 파인애플과 바나나를 구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이 워디안 케이스 덕분이죠. 이 책은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워디안 케이스를 구체적으로 다룬 독특한 교양서적입니다. 책의 구성이 무척 잘 되어 있는 편인데요, 워디안 케이스를 서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식물을 다른 대륙으로 나르는 것이 어려웠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워디안 케이스가 어떻게 탄생했나, 워디안 케이스가 어떤 식물들을 옮겼고 어떤 성공 사례들이 있나, 그리고 워디안 케이스가 뜻하지 않게 옮긴 각종 생물들과 침입종들로 인한 명암은 무엇인가, 그리고 결국 왜 각국의 식물 반출입법이 생겨났고 워디안 케이스가 몰락하게 되었는가를 한 편의 장대한 소설처럼 흥미로운 서사로 구성하고 있는 책입니다.
경제
- 리스크의 과학 (앨리슨 슈레거): 저는 “운”이란 한 개인이 스스로의 인생에서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입사에 성공하는 것, 암에 걸리는 것 등등 개인의 인생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은 무척 많이 있죠. 하지만 그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도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리스크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입사 성공 여부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여러 회사에 지원하면 성공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암 역시도 예방과 생활 습관 변화를 통해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업 자체에 리스크가 내포된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보다 실패 위험이 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죠. 이 책에서는 직업 자체에 내재된 리스크를 사람들이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다루고 있는데요, 무척 흥미로운 사례들을 많이 다룹니다. 즉 파파라치, 서퍼, 경마 사육자, 포커 세계 챔피언, 사창가 스트리퍼, 영화 제작자와 같이 이른바 “실패의 비용”이 너무나 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관리하는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배운 경험들이 제 업무에서의 리스크 설계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에르고드 이코노미 (권오상): 저는 경제학 책을 좋아합니다. 다만 전통적인 경제학 책이 아니라, 행동 경제학처럼 전통 경제학의 근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을 좋아하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가정들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이 보통의 인간 군상에서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있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지, “효용”이라는 단변수 최적화가 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지, 경제학의 앙상블 평균이 왜 장기적 미래를 대상으로는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는지 “돈내기”를 예제로 들어 설명하면서,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경제학에 대해서 제안합니다. 에르고드 경제학이 바로 이러한 경제학이죠. 저는 그 핵심을 단목표 최적화가 아니라, 여러개의 목표를 동시에 최적화하고, 장기적인 투자 결과를 최적화하는 경제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품 설계에 있어 여러가지 제약 사항들과 트레이드 오프를 고려해야 하는 제게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경제학의 목표가 현실 세계와 무척 가깝다고 느껴져서 동감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커다란 화두와 방향성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웠지만, 조금 더 구체적인 이론과 실증 사례가 부족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경제학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모래가 만든 세계 (빈스 베이저): 모래는 보통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처럼 흔하고 많은 것을 비유할 때 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래가 중요하지 않고 가치 없다고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현대 산업 문명은 절대적으로 모래에 의존하고 있고, 그 가치는 석유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죠. 우리와 가까운 사례만 보아도, 유리, 콘크리트, 그리고 실리콘 웨이퍼 등이 있는데요, 모두 공통적으로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라는 점입니다. 모래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모래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 등급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막에서 흔히 보이는 모래는 지나치게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콘크리트에 쓰일 수 없죠. 실리콘 웨이퍼에 들어가는 모래는 순수한 석영 결정이어야만 하구요. 이 책은 현대 문명이 어떻게 모래에 의존하는지, 모래라는 자원이 왜 중요하고 심지어는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물질의 세계>도 취향에 맞으리라 봅니다.
생물학
-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 (김은중): 면역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면역에 관계된 각종 세포들과 면역 기전들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으며, 앞으로 항암의 최전선에 면역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도 알게 된 계기가 된 좋은 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일본의 유명 만화인 <일하는 세포>도 떠올랐습니다. 내용과 풍부함 면에서 추천할만한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 분자 조각가들 :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신약을 만드는 현대의 화학자들 (백승만): 우리 삶 속에서도 익숙한 타이레놀이나 유명 항암제 글리벡, 그리고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에 이르기까지 “신약”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설명한 교양 과학서입니다. 단순히 약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자 측면에서 약을 제조할 때 현대 의학과 화학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는지를 다루는 점이 좋았습니다. 단백질, RNA, DNA 등등 여러가지 영역을 다루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수면제 파트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신약 제조에 얽힌 화학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세포, 생명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탐사기 (남궁석): 대부분 교양 과학 서적들은 얆고 넓게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든 책은 많지 않죠. 그런데 이 책은 흔치 않게도 “세포”라는 딱 하나의 주제에 대해 무척 깊게 파고들면서도, 교양 과학의 수준에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근육 세포로 흔히 알려진 액틴과 마이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세포 소기관은 어떻게 발생하고 분화하는지 등등 세포에 대한 많고 다양한 주제를 흥미롭게 잘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깊이 있는 교양 과학 서적을 읽고 싶으시다면 추천합니다.
- 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 (이일하): 식물의 발생, 자라나는 과정, 광합성 및 식물의 각종 단백질과 호르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최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쉬운 언어로 풀어 쓴 책입니다.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식물학 책을 원하시면 추천합니다.
- 굿 이너프 (다니엘 S. 밀로): 다윈이 사용한 표현 중에서 역사상 가장 큰 오해와 혼란을 낳았던 표현이 “적자 생존”(survial of the fittest)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다윈이 처음으로 만든 것도 아니었죠. 다윈의 불독이라 불렸던 헉슬리가 사용했던 표현이었는데요, 이를 다윈이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이 표현의 가장 큰 문제는, 자연은 1등만 살아남는 가혹한 생태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경쟁과 억압의 정당화, 더 나아가서는 인종간의 우열이나 우생학의 탄생을 가져오는 비극적 결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죠. 이 책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탁월성(excellency)이 충분함(enough)과 같이 않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즉 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1등 한명만이 아니라, 어느정도 적당해도 (good enough) 충분히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인데요, 그것이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원래 의도했던 “survival of the fitter”와도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윈의 핀치나 기린은 일종의 극단적인 예화이며, 자연에서는 뿔매미나 사슴의 뿔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설명합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도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자연은 우리가 살찌기를 바란다 (리처드 J. 존슨): 우리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책입니다. 책에서는 다른 여러 동물들과 곤충들을 비교 연구하면서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2가지, 과당(프럭토스)과 염분으로 인한 탈수 증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근거로 가을에 잔뜩 당분을 섭취해서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들과 사막에서 수분을 얻기 위해 혹에 살을 찌우는 낙타를 근거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비만은 자연의 관점에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점을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즉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솔루션일 뿐이라는 점이죠. 다만 이것이 현대인의 생활 습관과 맞지 않아 몸에 거짓 알람 신호를 보내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이 책을 읽고나니 “과당은 독이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당분과 염분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흘렸는데, 그게 왜 좋지 않은지 논리적으로 설득되니 더 이상 입에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고 나서 습관처럼 먹던 초콜릿과 과자, 그리고 탄산 음료를 완전히 끊어버리게 되었는데요,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처럼 5kg가 빠지게 되더라구요. 비만에 얽힌 과학이 궁금하고, 어떻게 식단을 조절해야 할지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빌 슈트): 심장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교양 과학서입니다. 심장의 해부학적 기능과 폐쇄 순환계가 어떻게 “발견”되었나, 그리고 동물들이 가진 심장들은 어떤 차이가 있나 등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는 책입니다. 지렁이는 심장이 5개나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고래가 어떻게 수백 킬로에 달하는 거대한 심장을 움직이나 하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고래, 지렁이, 곤충 등등을 비롯한 각종 생물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적으로 심장을 발달시켜왔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어떻게 심장의 기능상의 차이가 생겨났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책입니다.
교양 과학
-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 (벤 롤런스): 이 책은 지구 북부의 한계 수목림을 중점적으로 다룬 생태학 책입니다. 북부의 한계수목림에 어떤 나무들과 동물들이 사는지, 지구 온난화가 그곳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인지 등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적응하지 않는 생물들은 결국 도태되어 밀려날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요, 그런면에서 책의 한 챕터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즉 백날 학회장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해 떠드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그린란드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수목림을 조성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저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생태학 책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여담이지만, 북부 한계 수목림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영도의 유명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한계선이 떠올라서 재미있었습니다.
- 아더랜드 (토머스 할리데이):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빅 히스토리 책입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지질 시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면서 지구상에 어떻게 생긴 생물들이 살았는지, 지구의 지형과 기후들은 어땠는지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상상하도록 만드는 책입니다. 고대 생물들이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무엇이 멸종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에 생물상이 어떻게 바뀌어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다보니, 마치 인류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빅 히스토리 및 고대 생물들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6가지 주요한 물질이 있습니다.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그리고 리튬이 그것이죠. 이 책은 이 물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채굴되고 통제되는지, 그리고 어떤 공정을 거쳐서 가공하여 활용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하는 책입니다.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모래 파트는 <모래가 만든 세계>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블루 머신 (헬렌 체르스키): 이 책은 바다를 중점적으로 다룬 해양 물리학 책입니다. 책에서는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합니다. 바닷물이 어떻게 수온과 염분에 따라 수괴로 분리되면서 해류를 형성하는지, “해설”이라고 불리는 영양소들이 어떻게 탄소의 순환이 기여햐는지, 깊은 바닷물이 섞이면서 영양소가 해양으로 올라오는 것이 생물계에 왜 중요한지 등등을 무척 흥미롭게 잘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모여서 바다는 일종의 폐쇄형 엔진 시스템을 구성는데요, 그것이 제목에서 말하는 “블루 머신”입니다. 해양을 무척 자세한 주제로 다룬 책으로, 바다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문학
-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리사 크론): 사람은 이야기에 끌립니다. 타인의 실제 이야기이든,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리고 매력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바로 독자가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체험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대리체험의 장점은, 독자가 실제적인 물리적 위협 없이도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호랑이에 대해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고 집으로 찾아오는 이야기를 통해 호랑이의 위협에 대해 훨씬 더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통한 대리체험과 자동적인 공감 능력이 인간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인류 문명 시작부터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온 것이겠죠. 책에서는 독자들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떻게 대리체험을 하는지 설명합니다. 독자들은 산문 문학을 통해서 사물을 시각화하고, 주인공의 감정을 느끼며, 주인공의 고통을 간접 체험하게 되죠.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 분이라도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씩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어떤 소설은 재미있었고 왜 어떤 소설은 재미가 없었는지를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술
- 아트 컬렉팅: 감상에서 소장으로, 소장을 넘어 투자로 (케이트 리): 최근 아트 시장의 특색은, 소수 부자들만이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MZ 세대들도 넓게 참여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는 오늘날의 아트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왜 미술품을 구매하는지, 그리고 갤러리를 중심으로 아트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폭넓게 다룹니다. 꽤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아트 시장이 무척 불투명한 시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작가, 갤러리, 그리고 큐레이션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나온다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존 파웰): 원제는 “How music works”인데요, 음악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왜”라는 질문에 최대한 과학적으로 대답한 교양 과학 예술서입니다. 즉 무엇이 음악을 구성하고, 무엇이 다른 음색을 만들고, 왜 반음 화성이 귀를 거슬리게 하며, 왜 장조는 밝게 들리고 단조는 구슬프게 들리는지 등등을 훌륭하게 설명하는 교양 음악서입니다. 다만 음표나 악상기호, 조성 등은 일반인들에게는 없어도 될법한 내용인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2025년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