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탱크 (★★★★✩)
“탱크”라는 공간에 모여 기도하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사실 치덕치덕하고 우울한 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미스터리 및 스릴러 요소가 더해진 전개와 글을 읽게 만드는 필력이 좋아서 끝까지 읽게 되었다.
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의 소설은 “환상 문학의 거장이 귀환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공포 일변도의 서양 귀신들과는 다른, 여러가지 사연이 있는 동양의 귀신들이 얽힌 공포 환상 문학의 정수로, <환상 특급>을 보는 느낌이 든다. 잘 벼려진 칼과 같은 깔끔한 문체, 현실적인 등장 인물 등 글의 구성과 필력도 좋은 편이다. 소설 중간에 등장하는 형제가 제사장에서 싸우는 이야기가 무척 현실적이었다. 괜히 맨부커상 후보에 올라간 것이 아닌 듯. 추천!
이야기 시리즈 (★★★★✩)
라이트 노벨계에서는 유명한 작품이다. 샤프트가 만든 <괴물 이야기> 애니메이션이 성공을 거둔 이후 더욱 유명해졌다. 괴이물 + 청춘물 + 미스터리 + 캐릭터물이 융합된 독보적인 라이트 노벨으로서, 다소 마니악한 말장난과 섹스 어필, 그리고 대화와 설명만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정적인 진행이 조금 거슬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가볍게 읽을만한 훌륭한 라이트노벨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나데코의 성장 이야기를 다룬 <분신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내일을 부르는 키스 (★★★★✩)
꽤 재미있게 읽은 단편으로, <사랑의 블랙홀>에 타임 리프 및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섞은 이야기이다. “이 하루가 무한히 반복되게 해주세요”에서 시작된 소원이, 하필이면 국제선 항공기의 한가운데에서 리스타트 한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추천!
시인장의 살인 (★★★✩✩)
일명 초자연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를 다루는 장르인 “특수 설정 미스터리”의 시초격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좀비물 + 추리물이다. 개인적으로 유명세에 비해서 설정이나 전개 혹은 캐릭터가 특출나지는 않았고, 등장 인물들도 다소 많은 편이었으며, 동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던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섯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
여섯명의 대학생이 입사 면접을 위해 한 유망한 스타트업 회사에 모였다. 처음에 회사에서는 모든 지원자들이 합격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면접 전날 말을 바꿔 “합격자는 이 중 단 한명이고, 누구를 합격시킬지는 지원자들 스스로 결정하라”고 통보하면서 배틀로얄식 입사 전쟁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 지원자들 가운데 살인자가 있다는 협박성 고발문이 등장하면서 누가 협박범이고 살인범인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중반부 전개의 긴장감이 무척 좋은 편이고, 후반부에서는 청춘소설 및 성장물적인 요소로 마무리되는데, 이것이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편이다. 다만 초반부 전개가 다소 늘어지는 편이고, 스스로 합격자를 결정하라는 식의 지나친 무리수 설정과 진범의 정체와 동기가 작위적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괴담의 집 (★★★★★)
심리 호러 소설로 유명한 마쓰다 신조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섯 가지의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공포 괴담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 작품의 마지막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가면서 중간중간의 빠진 부분들을 채워서 하나로 묶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고, 이를 주인공이 직접 겪는 메타 추리의 형태로 풀어낸 점도 공포감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밤에는 가급적 읽지 말기를 권한다.
마당 깊은 집 (★★★★✩)
6.25 전후의 대구를 배경으로, 일명 “마당 깊은 집”에 함께 사는 평양댁, 준호 아저씨, 성준형 등의 여러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며 혼란스러웠던 전후의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낸 자서전에 가깝다. 유려하고 잘 읽히는 문체가 특징으로, 모든 캐릭터들이 현실감있고 입체적으로 등장하며 시대와 치열하게 싸워나간다는 점이 소설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 같다. 전후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속학적인 가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들이 있는데, 나와 책의 간극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먼저 시대상의 거리감인데, 내가 전후 세대가 아니다보니 등장 인물과 시대적 배경에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는 소설 형식상의 거리감인데, 각 캐릭터들에게 서사가 주어져 있지 않아서 드라마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즉 일반적인 소설을 기대하고 읽다보니 다소 심심하고, 소설의 형식을 띤 자서전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괜찮은 것 같다.
사랑의 가설 (★★★★★)
재미있게 읽은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다. 다른 로맨틱 코미디 소설과는 다르게 대학원 박사과정 생활을 다룬 점이 독특했고,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궁상맞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가난한 대학원생의 생활, 그리고 가짜 데이트라는 로맨스 소설의 황금 공식을 잘 지켜내어서 단숨에 끝까지 읽게 만든 재미있는 소설이다. 다만 좀 야한 장면이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는 읽으면 안된다. 또한 빌런의 캐릭터가 조금 아쉬웠는데, 그 점을 제외하면 캐릭터간의 티키타카와 케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가볍게 읽을 로맨스 소설이 필요하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개들이 식사할 시간 (★★★✩✩)
<살인자의 쇼핑몰>을 워낙 재미있게 봐서 이 책도 읽어보았는데, 단편들이 청승맞은 느낌이 강해서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살인자의 쇼핑몰 (★★★★★)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주인공은 삼촌과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삼촌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삼촌의 인터넷 쇼핑몰 창고를 노리며 수상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속에서 쇼핑몰과 삼촌에 얽힌 비밀이 하나씩 풀려간다. 강지영 작가는 한국 장르 문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분이지만, 나는 액션, 스릴러, 느와르가 하나로 합쳐진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캐릭터, 구성, 배경 등등 워낙 흡입력 있는 요소들이 많아서 단번에 끝까지 읽었다. 드라마라도 나와 있는데, 후반 부분을 제외하고는 각색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액션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홍학의 자리 (★★★★★)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는 첫 문장이 대담하고 인상깊은 미스터리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이 잘 조형되어 있고, 진상 자체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호흡이 무척 뛰어난 스릴러이다. 마지막의 서술 트릭 반전이 인상적인데, 개인적으로는 반전의 정체를 너무 숨긴게 아닌가 싶었고, 또한 반전 그 자체가 진상에 끼치는 영향은 다소 적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팬이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섬에 있는 서점>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개브리얼 제빈의 신작이다. 소꿉친구인 두 사람이 함께 게임을 만들어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른 청춘 성장물이다.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유머스러운 문체, 잘 조형된 3명의 주연 및 조연 캐릭터들, 대화의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캐릭터의 성격과 매력 등등, 정점에 서 있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은 소설이다.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거나, 관련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다소 열린 결말에 가까운 결말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내가 끝마무리가 확실한 작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청춘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것 같다. 여러모로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던 소설이다.
디 아더 유 (★★★★★)
사람의 얼굴을 보고 완벽히 기억하고 분간해내는 “초인식자”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그 초인식자를 주제로 도플갱어라는 오컬트적 요소를 흥미롭게 조합한 모던 고딕 스릴러 + 범죄 수사물 소설이다. 사실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진범의 정체와 도플갱어의 진상을 어렵지 않게 추리할 수 있는데, 진범의 동기가 설득력이 부족한 점이 약점이다. 하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호흡이 괜찮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붉은 강 세븐 (★★★★★)
6명의 사람들이 보트에서 눈을 뜬다. 한 명은 이미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태였다. 기억이 없는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미 멸망해 버린 세계 속에서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스릴러 + 호러 + 좀비물이다. 도입부도 모범적이었고, 중간중간 세계관의 비밀을 밝혀내는 완급도 좋은 편이었으며, 좀비물 특유의 긴장감도 잘 조성되어 있는 편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물을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SF 모음집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공뇌, 인공 지능, 인공지능 판사, 인공지능 변호사, 그리고 재판의 드라마를 다룬 <인간의 대리인>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에피소드이다. 캐릭터의 개성과 드라마성, 그리고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어서, 사실 장편 시리즈로 이어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머지 작품들은 문체, 캐릭터, 주제 등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 (★★★★★)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은 흔치 않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서사에 크게 의존하는 영화나 소설 같은 미디어는 훌륭한 속편이 흔치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흔치 않은 예외에 속한다. 작가의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모던 고딕 스릴러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모범적인 스릴러라면, 이 작품은 전작을 뛰어넘은 매력을 보여주는 스릴러이다. 헨리, 릴리, 조앤, 리처드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에서 오는 정보의 긴장감, 그리고 마지막의 장르적 쾌감까지, 장르 소설의 장점을 무척 잘 살려낸 훌륭한 스릴러이다. 이 책을 보려면 전편을 꼭 읽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속작도 계속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 (★★★✩✩)
어느날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 앞에 상자가 하나씩 도착한다. 그 상자에는 사람의 남은 수명을 알려주는 끈이 들어있다. 흥미로운 설정의 하드 SF이다. 다만 이 소설의 메인 스포트라이트는 사실 세계관(“끈”)이고, 각종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이를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 점이 아쉬웠다. 드라마성이 약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일들이 생기겠구나, 하는 점을 고찰하는 사변 소설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의 작품으로는 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된 <S 라인>이 가장 독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튼 이 작품도 이러한 하드 SF의 장단점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즉 분산된 캐릭터들 때문에 매력적인 설정을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소녀무녀 봄: 청동방울편 (★★★★✩)
영 어덜트 + 추리 + 오컬트 + 스릴러 + 학교물이라는 신박한 구성의 소설이다. 주인공은 거만한 말투를 쓰는 신묘한 여중생 무녀이고, 진상을 추리할 때 오컬트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특수 설정 미스터리에 속한다. 개성있는 등장 인물들이 많고 이야기 진행도 흥미로운 편이었는데, 단점은 등장 인물들이 너무 많은 편이어서 산만하다는 점이었다. 군상극 혹은 다중 주인공을 택한 것 같은데, 문제는 초점이 명확하지 않아 “봄”이 주인공인지, 소희가 주인공인지, 선비가 주인공인지 혼란스러웠고 소설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갈아 만든 천국 (★★★★★)
해리 포터가 봉준호를 만났다면? 이 책에서 그 답을 알 수 있다. 초능력자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배경으로, 일종의 유전되는 초능력인 “역장”이라는 설정을 통해 형성된 장기 밀매 시장과 이를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도구로 만든 점이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심너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다.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라면, 허무한이라는 캐릭터에게 서사와 변화점을 조금 더 부여하고, 서지현과의 서사를 에필로그에서 조금 더 마무리 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점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어반 판타지 + 블랙 코미디 소설이다.
Endymion, The Rise of Endymion (★★★★✩)
전편 <히페리온>과 <히페리온의 종말>을 워낙 재미있게 읽었기에, 후속작인 이 책도 읽지 않을수가 없었다. 좁아터진 한국 SF 시장의 현실상 도저히 후속작은 한글 번역을 낼 수 없었는지, 영어 원서로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히페리온>이 순례의 책이라면, <엔디미온>은 일종의 유랑 모험극이자 종교 서사극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인공 라울 엔디미온은 시간의 피라미드에서 등장할 예정인 이니아라는 소녀를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띄고 안드로이드 베틱과 함께 가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역시 전작의 등장 인물들의 재등장이 아닐까 싶다. 스포일러가 되어서 자세히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무척 반가운 부분임에 틀림 없다. 또한 어느정도 등장 인물들의 목적과 결말이 예상되는 책의 마지막 1/3부분이 무척 감성적이었다. 죽음, 프리캐스팅, 탈출, 예정된 재회와 만남, 공감과 다양성을 통해 생명이 가득한 은하를 만든다는 비전, 그리고 “다시 선택하라(Choose again)”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 등등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들이 무척 인상에 남았던 소설이다. 구세주 신화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조형과 세계관으로 커버가 되는 훌륭한 이야기이다.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중간의 유랑기 부분이다. 원작에서도 살짝 등장한 테티스 강을 중심으로 한 파캐스터 여행이라는 아이디어는 재미있었는데, 쫓아오고 도망가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어느정도 진행이 예상 가능해지면서 마치 게임에서 억지로 채워넣은 분량 때우기용 내용을 보는 것 같아서 지루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또한 주요 등장 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드 소야”의 심경 변화가 좀 더 명확하게 묘사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었고, 안드로이드 베틱은 생각보다 너무 활약이 적다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엔디미온의 각성>에서도 초반에 배를 찾으러 가는 부분이 좀 늘어지고, 생각보다 주인공 활약이 별로 없어서 답답한 점이 아쉬웠다. 중반에 다시 캐릭터들과 재회하면서 내용이 흥미로워졌는데, 메시아의 행적을 재해석한 스토리는 흥미로우면서도 예상 가능한 결말이라는 점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또다른 아쉬움 가운데 하나는 설정 충돌이다. 즉 전작 설정과 세세하게 충돌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를 “거짓말”이나 “정확하지 않았다”고 어물쩍 퉁치는 부분들이 조금 아쉬웠다. 처음부터 설정을 좀 더 정교하게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엔디미온> 시리즈 자체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슈라이크의 카리스마가 죽어버려서 버림말 혹은 전송기(..)로 사용되는 점도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이야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전작을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요리코를 위해 (★★★★✩)
범인의 수기로 시작하는 점이 독특한, 전통적인 탐정 형사물이다. 사실 장르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진범의 정체는 눈썰미있게 짐작이 가능하다. 다만 범인의 동기가 다소 억지스럽다고 느꼈는데, 사건에 캐릭터를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었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무난한 형사 추리 수사물로 읽을만하다.
야미하라 (★★★★★)
일종의 코지(cozy) 호러 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소설인데, 이웃 사이의 괴롭힘, 어머니 모임 사이의 은근한 알력, 직장 내 괴롭힘 등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공포”와 어둠의 상황을 소재로 한 호러 소설이라는 점이 독특했다. 보통 이러한 공포 소설들은 줄창 당하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라 퇴마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극의 활력과 캐릭터의 흥미를 더해주었다. 즉 <파묘>처럼 조금 더 대중적인 호러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편들이 모여서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구성이 매력적이고, 시리즈로 계속 나와도 재미있을법한 소설이다.
종말 하나만 막고 올게 (★★★★★)
짜장면집에서 정체를 감추고 있는 외계인이 등장하는 <가울반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패러디한 <레어템의 보존법칙> 등 현실 세계에서 볼 법한 생동감 있는 배경 설정이 매력적인 SF 단편 모음집이다. 생동감있는 캐릭터와 유머가 훌륭하다. SF를 좋아하시는 팬이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름 (★★★✩✩)
타임 리프라는 소재는 사실 식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스터리와 결합되면 흥미로운 소재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를 흥미없게 풀어나가는 점이 단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풀어야 할 “문제”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랬다. 즉 소꿉친구의 동생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직접 문제를 마주하고 풀어나가는 식이어야 했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중도 하차.
나를 찾지마 (★★★★★)
주인공이 60대 할머니라는 점에서 독특한 소설이다. 주인공이 노년 재혼을 일주일 앞둔 환갑날, 10년 전 죽은 남편이 돌아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장르를 특정하기 힘든 소설인데, 굳이 분류하자면 가족 스릴러 드라마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의 플롯도 잘 구성되어 있고, 캐릭터들의 조형도 입체적이며, 등장 인물들의 변화 포인트도 잘 설명되어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남성으로서의 가장의 역할이 무엇일까라는 작품의 주제는 자칫하면 교조적으로 될 법한데도, 이를 튀지 않게 그려낸 솜씨도 훌륭하다. 중간중간 플롯과 서사가 조금씩 튀는 지점들이 있지만,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분들이라면 가슴에 와닿을 지점들이 많이 있는 좋은 소설이다.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
재미있게 읽은 오컬트 호러 소설이다. 조선시대를 비롯한 여러 시대상들을 다루는 것도 흥미로웠고, 캐릭터와 플롯을 이끌어나가는 완급 능력도 좋았다. 보통 이런 호러 소설들이 자칫 맥없이 당하기만 (?)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괴력난신과 대면하고 승리해서 변화하는 캐릭터 상을 잡아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데이트 폭력 등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풍부하게 쓰여진 소설로,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근원이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설이다.
선택의 날 (★★★★✩)
아내의 유괴를 다룬 훌륭한 스릴러이다. 극의 진행, 플롯, 캐릭터의 변화 지점 등이 매력적인 소설이고, 조연의 디자인도 잘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주인공 캐릭터가 매력이 없다는 점이다. 즉 주인공은 고구남이라는 조연 캐릭터에 끝까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데, 주도적으로 사건과 마주하거나,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지점이 없다. 즉 끝까지 갑갑하다. 문제는 이러한 주인공의 결함 때문에 독자가 감정 이입하기에는 심히 방해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아내의 뺨싸다구라도 올려치거나, 아니면 고구남을 칼로 찌르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플롯도 사실 좀 갸우뚱한 것이, 유괴는 초중반의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역할로만 등장하고, 그 이후에는 사실상 동력이 사라진다. 그리고 아내의 마지막 선택 역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도 하고. 즉 스릴러로는 나쁘지는 않지만, 그 외에 있어서는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이다.
괴담의 테이프 (★★★★✩)
호러 소설의 대가 마쓰다 신조의 작품으로, 이 책은 자살자가 남긴 녹취 테이프를 통해서 구술되는 이야기를 다룬 호러 소설이다. 마쓰다 신조의 작품은 특히 밤에 읽을 때 머리 뒤를 타고 흐르는 그 차가운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서,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여섯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액자소설로 결합하는 구성을 띄고 있는데, 테이프라는 매체가 가지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듣는 것만 가능하다”는 특성과 자살자의 공포감이 결합된 점이 독특하다. 추천!
고통에 관하여 (★★★✩✩)
정보라의 소설은 나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먼저 소설의 등장 인물들이 외자 (한 글자)인 점이 별로였는데, 이름이 독특하다보니 도대체 누구의 시점에서 누구랑 이야기하는지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고통을 신봉하는 교단이 있다는 사실도 썩 흥미롭거나 현실적인 설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영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중도 하차.
어리석은 자의 독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식의 구성을 통해 정보 격차의 긴장감을 한껏 살리고 있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캐릭터들의 깊이가 무척 뛰어난 소설로,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먼저 주요 등장인물인 “기미”와 “유키오”의 정체는 과거편에서 밝혀지는데, 일종의 동기편에 해당하는 과거편이 너무 길다고 느꼈다. 차라리 등장 인물의 고백으로 간략하게 처리했으면 싶었을 내용을 탄광촌 내용을 다루며 너무 길게 다룬 것은 아닌가 싶었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도 존속 살인, 약취와 협박 등등 어두운 내용이 많았다. 또한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인공이 부재한다는 점이 아쉬웠는데, 차라리 빌런을 그 자리에서 바로 단죄했더라면 훨씬 덜 갑갑했을 것 같다. 또한 작품 구조적인 측면에서 중간중간 시점이 자주 변하는데, 그때 “내가 누구에게 이입해서 소설을 읽어야 하나”하며 혼란스러웠던 지점이 있었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다.
콘트라바스 (★★★✩✩)
콘트라바스 주자인 주인공이 1인칭 독백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연출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짧아서 군더더기가 없는 소설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콘트라바스라는 악기는 단순히 주인공이 연주하는 독특한 악기로 묘사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로서 이야기 전체에 등장한다. 즉 없어서는 안되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보통의 타인에게 무관심한 현대 사회, 그리고 계층에 의한 억압의 비유로써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의 뒤틀린 감정을 묘사하기 위한 정교한 배경 설정에도 많은 공을 들였는데,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을 주요 동기로 삼아서 어떻게 콘트라바스 주자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이 연모하는 대상인 사라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에서도 심리적인 측면에서 소유욕과 질투가 강하게 느껴지는 점을 표현해서 주인공의 낮은 자존감을 잘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중간에 이를 망칠 공상을 몇 번이나 이야기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
노동자 없는 노동 (★★★✩✩)
인형 눈알 붙이기 같은 이른바 “미세 노동” (SaaS)를 다룬 책이다. 그런데 깊이가 얇은 편이고, 이런 노동 시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작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이 단점인 것 같다.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인 듯.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 (★★★★✩)
언론 자유에 대한 고찰을 담은 책으로, 문재인 대통령도 추천한 책이다. 5명 정도의 저자가 나누어서 쓴 책인데, 통일성있게 책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 둔 점이 좋았다. 다만 정치학 책이 대부분 그렇지만, 서양 철학 및 정치철학의 사조들에 대해 미리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성과 합리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데이터에 기반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졌던 일종의 정책 배심원제인 “국민숙의제”와 같은 것이 일회적인 정책 결정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고, 핵심적인 시민 발의 법안에 대해서 국회가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배심원단이 판단해서 입법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배심원제가 꼭 형사 재판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친애하는 슐츠 씨 (★★★★★)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만연했던 편견을 넘어 평등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던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우리에게는 “스누피”로 알려진 유명한 미국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가 어떻게 작품에 최초로 흑인 프랭클린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운동을 잘 하는 마시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게 되었는지 책에서는 그 뒷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떻게 여자 옷에 주머니가 달리게 되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도 등장한다. 편견과 차별은 하루아침에 누군가의 생각이나 주장 혹은 가르침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씩 뜻과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무척 훌륭한 책으로,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한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보통 산재를 다루는 글이나 기사들은 사고를 당한 사람에 얽힌 구구절절하고 슬픈 사연만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남겨진 가족들의 사연들은 눈시울을 붉히기에는 충분하지만,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고,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책은 개개인의 스토리에서 벗어나, 왜, 그리고 어떻게 산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지, 시스템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를 다루는 책이다. 산재는 개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시스템 실패이며, 절대로 일회적인 (anecdotal) 사고가 아니다. 즉 “어쩌다가 실수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수많은 경고 신호들을 무시하다가 발생하는 사고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각각의 산재에 대해 개개인의 사연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문제를 지적한 점이 책을 깊이 있게 만들었던 것 같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해결책도 다룬 점이 책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본다. 그믐에도 조금 길게 감상문을 올렸다. (https://www.gmeum.com/blog/shyoo/4366) 추천!
프레스턴, 더 나은 경제를 상상하다 (★★★✩✩)
다소 지나치게 깊게 정치적 어젠다를 다룬 책이어서 읽기 부담스러워 중도 하차했다. 책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특정 정치적 견해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도 있는데, 사실 나 역시 그 주장에는 동조하는 편이지만 그것이 책의 핵심 내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중도 하차.
신뢰 이동 (★★★★✩)
무엇이 낯선 이의 차에 탈 수 있도록 만들고, 낯선 사람의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만들까? 바로 “신뢰”가 그 핵심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거대한 플랫폼이 된 우버와 에어비엔비를 보면 그 신뢰의 가치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블록 체인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K-방역은 왜 독이 든 성배가 되었나 (★✩✩✩✩)
진지하게 방역을 고찰하며 반성하는 책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독자 연구와 음모론을 모아 만든 브런치 글 모음집이었다. (..) 방역 전략에 대해서 다시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백신에 대해서 믿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무척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어서 그냥 중도 하차해버렸다. 예전에도 있어왔고, 이 책이 마지막도 아니겠지만, 이렇게 검증받지 않은 독자 연구가 책으로 나온다는 사실에 한탄할 수 밖에 없었다. 비추.
가난이 사는 집 (★★★★★)
이 책은 판자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한국의 판자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시대를 지나면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그리고 주택 재개발사업과 맞물려 어떻게 문제가 되었고, 어떻게 해결이 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 훌륭한 책이다. 한국의 재개발 모델이 세계 다른나라들의 사례에 비교해 보았을때 오히려 잘 정착한 모델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
이 책은 탄생부터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하 선한 천사)를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선한 천사>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핑커가 지은 <선한 천사>는 그 도전적이고 역설적인 내용 때문에 주목을 받아왔는데, 핵심 내용은 바로 “시간이 지나가면서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폭력의 강도와 횟수는 감소해 왔다”는, 이른바 우리의 보편적인 인식인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론을 정면으로 부수는 내용이어서 화제가 되어 왔다. 특히 이 책은 빌 게이츠가 강력히 추천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되었다. 이 책이 인기를 끈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일종의 “기술관료적인 낙관론”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여러분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으로도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일종의 희망적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런 강렬한 감정을 느꼈었다.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이하 <악한 천사>)는 <선한 천사>를 읽고 마음이 불편했던 역사학자들이 지은 책이다. 왜냐하면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어느정도 기록이 있는 중세와 근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소 공백이 많은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는데, 전쟁과 폭력에 대한 수치 데이터는 어쩔 수 없이 과거로 갈수록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기에 많은 부분을 추측과 가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공백들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선한 천사>를 비판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악한 천사>를 읽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먼저 “감정”에 강하게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서를 표방하고 있고, 근거 자료와 출처도 다 제시하고 있지만, 대중을 위한 글쓰기라기 보다는, 마음이 불편했던 학자들끼리 연회장에 모여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떠드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정치철학을 논평하는 파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라기에는 너무도 난해하고 난삽했다. 나는 차라리 이 책이 <선한 천사>처럼 데이터와 그래프를 바탕으로 논증을 펼쳤다면 좀 더 수긍하기 쉬웠을 것 같다. 또다른 논거는 다른 종류의 폭력은 증가해 왔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 이것은 목적 흐리기와 논점 이탈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영역에서 폭력이 감소하지는 않았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다. 하지만 “전쟁”에 한정해서 보는 것이 더 의미있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선한 천사>를 반박하기에는 마음에 와닿지 않는 측면이 많았고,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
<악한 천사>가 효과적으로 자신의 논증을 전개하였느냐와는 별개로, 나는 <선한 천사>도 <악한 천사>도 완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한 천사>에 대한 가장 최근의 내 생각은 “믿고 싶다”이다. 즉 기술의 발전, 인류의 합리주의와 이성의 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가 보다 평화롭고 나은 미래를 만들 거라는 사실을 나 역시도 믿고 싶다. 뒤집어 말하자면, 나는 미래가 무작정 좋아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비관적 낙관주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보이는 전쟁 혹은 폭력의 횟수는 줄었을지라도, 전체적인 리스크 자체가 줄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도 있지 않은가. 핵무기가 큰 전쟁을 억제할 수는 있어도, 이는 리스크를 눈에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긴 것일뿐이지 없애거나 줄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이 근본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고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나는 인간의 본성이 평화적으로 변하기에는, 인류가 아프리카로부터 나온 이후 20만년이라는 시간이 생물학적으로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생존 본성에는 집단을 이루고자 하는 본성 (집단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집단을 지키고자 하는 본성, 그리고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이를 관철시키려는 본성이 남아있다고 본다. 다만 민주주의와 같은 시스템이 폭력을 집단의 생존에 더 이상 유리하지 않은 것으로 외재화시켰다는 점에서 희망이 있다고 보지만, 개개인의 레벨에서 여전히 폭력은 남아있다는 점에서 모든 도화선이 제거되지는 않았다고 본다. 즉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로부터 20만년이 더 지난 후라면 분명 의미있는 주장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나는 <선한 천사> 그리고 <악한 천사> 모두 다 의미있는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본다. 기회가 된다면 두 책을 모두 다 읽고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본다.
인류학
진화하는 언어 (★★★★★)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생겨나고 변해 왔는지를, 독특하게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가장 큰 핵심 주장은 모든 언어는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발전해 왔다는 점인데, 이에 대한 근거로 제스쳐 게임 (charades)을 들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두 문명의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이런 “손짓 발짓”을 통해서 의사 소통을 전달하게 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음성 언어가 사용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몇몇 단어들이 조금 더 빈도적으로 많이 쓰이게 되며, 동시에 단어들의 용례 확장과 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차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딸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도,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류학 및 언어학 책을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커피의 모든 것 (★★★✩✩)
커피를 다루는 종합 교양서이다. 커피 나무와 원두에서부터, 커피 로스팅과 에스프레소 기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다루는 종합적인 책인데, 문제는 pdf 형식이어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푸드 지오그래피 (★★★✩✩)
우리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다룬 책이다. 예를들어 부산 어묵의 역사가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든지 하는 내용들을 다룬다. 각각의 주제를 깊이 다루는 책은 아니어서,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심리학
불륜의 심리학 (★★★★✩)
불륜이라는 미묘한 주제를 심리학으로 다룬 책이다. 이런 주제의 책은 접해본 적이 없다보니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서 왜 사람들이 불륜 관계에 빠져드는지, 왜 어떤 경우에는 관계가 지속되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지, 왜 내연남보다 내연녀가 많은지, 그리고 어느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심리학 사례 연구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불륜의 문제를 도덕으로 다루기보다는, 생물학적 및 사회 심리학적 시선에서 바라볼 때 그 동기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인 분들은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나라는 착각: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
“나”라는 자아는 어떻게 생겨날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없던 자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더 복잡한 일들이 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면서 “자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두뇌가 우리의 인생 경험들과 사건들과 맥락들을 이어붙여서 편집하고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뇌는 무엇인가를 해석하고 만들어내는데 무척 뛰어난 선수다. 그렇게 뇌가 압축과 해리의 과정을 거쳐서 단편적인 사실들을 서사로 재구성하며 자아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근거로 정신 분열증과 각종 사회학적 심리학적 사례들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이야기”가 자아에 미치는 강력한 힘을 이야기하는데, 마침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읽고 이 책을 읽은지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역사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책 (★★★★✩)
단순한 지도책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맥락을 통해 지도를 설명하는 일종의 지도 통계학? 같은 책이다. Charles Minard 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시 어떻게 군대의 숫자가 줄었는지를 나타낸 전설적인 데이터 인포그래픽 지도가 있는데, 그런 느낌의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실업이 바꾼 세계사 (★★★★✩)
실업이 어떻게 세계사의 주요 전환점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중국과 한국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인데, 중국과 우리나라의 각종 “난”들, 특히 이승만 정부를 뒤엎은 4.19 혁명도 결국은 높은 실업율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사회 구조의 변화로 대량 실업이 발생하는 순간이 정권이 가장 취약해질 수 있는 순간인데, 왜 각종 정권들이 실업율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지 알 수 있었다. 추천!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이른바 “테라리움”으로 알려진 밀폐된 환경에서 식물을 기르는 상자들이 있다. 신기하게도 물을 주지 않아도 물과 공기가 재순환되면서 식물이 잘 자란다. 이 책은 테라리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워디안 케이스”를 다룬다. 우리가 지금도 손쉽게 마트에서 파인애플과 바나나를 구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에는 이 워디안 케이스의 공로가 크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워디안 케이스를 구체적으로 다룬 독특한 교양서적이다. 책의 구성이 무척 잘 되어 있는 편인데, 서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식물을 다른 대륙으로 나르는 것이 어려웠나, 어떻게 워디안 케이스가 탄생했나, 워디안 케이스가 어떤 식물들을 옮겼고 어떤 성공 사례들이 있나, 그리고 워디안 케이스가 뜻하지 않게 옮긴 각종 생물들과 침입종들로 인한 명함은 무엇인가, 그로 인해 왜 각국의 식물 반출입법이 생겨나고 워디안 케이스가 몰락하게 되었는가를 한 편의 장대한 소설처럼 흥미로운 서사로 구성하고 있는 책이다. 추천!
자본시장의 문제적 사건들 (★★★✩✩)
한국 주식시장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문제적 사건들을 다루는 책이다. 각각의 사례들이 흥미롭기는 한데, 너무 전문적이고 지엽적인 “사실”을 설명하는데 집중한 것이 단점이라고 본다. 중반 이후부터는 머리속에서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중도 하차함.
10×10 로마사(텐바이텐 로마사) (★★★✩✩)
로마사에 있었던 각종 주요 인물들과 이들의 일화를 다루는 책이다. 포괄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데, 꼭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즉 책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 혹은 주제의 부족이 컸다. 중도 하차함.
설탕 (★★★✩✩)
설탕에 엮인 세계사를 집중 조명한 책이다. 어떻게 설탕이 발견되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플랜테이션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인데, 플랜테이션 파트가 지나치게 고유명사와 지엽적 사실에 집중한 위키피디아식 설명이어서 급격히 흥미가 떨어졌다. 중도 하차.
경제
버블 경제학 (★★★★✩)
2008년 부동산 경제 위기 때 나온, 경제학으로 치자면 고전에 속할법한 책이다. 이 책은 2008년 부동산 위기를 여러 측면에서 조망한다. 책에서는 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버블 때문이었다는 점, 그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의도와는 다르게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책에서는 여러가지 시스템적 해결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1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뒤돌아보자면 많이 적용되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지금 읽어도 큰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추천!
위기의 역사 : 외환위기부터 인플레이션의 부활까지 경제위기의 생성과 소멸 (★★★★✩)
경제 역사서에 속할 법한 책이다. 주요 경제위기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왜 위기가 되었는지, 그 전개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괜찮은 경제 교양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2008년 부동산 위기의 발생과 전개 등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게 새로운 정보를 얻기는 힘들 것 같다.
에르고드 이코노미 (★★★★★)
나는 경제학 책을 좋아한다. 다만 전통적인 경제학 책이 아니라, 행동 경제학처럼 전통 경제학의 근본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다.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이 가지는 근본적인 가정들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인간”이 보통의 인간 군상에서 백만 광년 정도 떨어져있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지, “효용”이라는 단변수 최적화가 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지, “돈내기” 예제를 통해 앙상블 평균이 왜 장기적 미래를 대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며, 단기적인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는 경제학에 대해서 제안한다. 에르고드 경제학이 바로 이러한 경제학이다. 나는 그 핵심을 단목표 최적화가 아니라, 여러개의 목표를 동시에 최적화하고, 장기적인 투자 결과를 최적화하는 경제학이라고 생각했다. 엔지니어로서 제품 설계에 있어 여러가지 제약 사항들과 트레이드 오프를 고려해야 하는 내게 있어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경제학의 목표가 현실 세계와 무척 가깝다고 느껴져서 동감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경제학 책을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워런 버핏 라이브 :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33년간의 Q&A 지상 중계 (★★★★✩)
워런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일종의 컬트 집회 같은 분위기로 유명하다. 이 주주총회에서 자유로운 질문 답변들이 오고가는데, 이 책은 그 질문 답변을 모아둔 책이다. 책을 통해서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책으로, 장기적 가치 투자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책을 읽다보면 알겠지만, 워런 버핏 역시 삽질과 실수를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투자 철학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추천.
모래가 만든 세계 (★★★★★)
모래는 보통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처럼 흔하고 많은 것을 비유할 때 쓰인다. 그래서 모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정반대의 대답을 내놓는다. 현대 산업 문명은 절대적으로 모래에 의존하고 있고, 그 가치는 석유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사례만 보아도, 유리, 콘크리트, 그리고 실리콘 웨이퍼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이다. 모래가 중요한 이유는, 모든 모래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니라 급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막에서 흔히 보이는 모래는 지나치게 둥글둥글하기 때문에 콘크리트에 쓰일 수 없다. 실리콘 웨이퍼에 들어가는 모래는 순수한 석영 결정이어야만 가치가 있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이 어떻게 모래에 의존하는지, 모래라는 자원이 왜 중요하고 심지어는 살인사건까지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물질의 세계>도 취향에 맞을 것이다.
경영
The First Time Manager (★★★★✩)
처음으로 매니저가 되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조언이 될 만한 책이다. 생각보다 꽤 괜찮게 읽었다. 다만 테크 기업의 매니저보다는 일반 매니저의 역할에 대해 좀 더 많이 다루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팀을 만들고 성과를 관리할 것인지, “코치”로서의 역할 등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꼭 매니저가 아니라도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씩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도시 공학
건축가가 사랑한 최고의 건축물 (★★★★✩)
가볍게 읽을만한 교양 건축서이다. 유명한 건축가별로 대표 건축물을 하나씩 골라서 설명하고 있다. 독특하게 생긴 건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있는 공간, 없는 공간 : 대한민국 1등 핫플레이스의 법칙 (★★★★✩)
얼마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더현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보통의 백화점 디자인과는 다르게 넓은 공용 공간을 중심으로 공간을 설계해 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공간 활용이 시원하고 만족스러워서 왜 사람들이 더현대에 많이 오는지 알 수 있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요즘 건축의 핵심은 사람이 올 수 있을만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공용 공간을 대담하게 활용하여 핫 플레이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흐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진심의 공간 (★★★★✩)
건축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을 이야기하며 사람과 삶과 공간을 건축이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다. 책에서는 문, 계단, 창, 지붕, 방 등등 건축의 구성요소들을 다루며 어떻게 공간을 정의할지를 이야기하며, 건축을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한다.
책에서는 건폐율과 빈 공간의 비율을 이야기하며, 과거 시골에 있었던 개방된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책의 시각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시골 사회는 폐쇄적이어서 이러한 개방 곤간이 오히려 판옵티콘과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점은 문체에 힘을 지나치게 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즉 간결하고 강한 개별 문장에 초점을 둔 나머지, 문장들이 조화롭게 이어져서 주제와 서사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학 – 물리학 및 화학
강력의 탄생 :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 (★★★★✩)
이 책은 자연을 이루는 4가지 근원 힘 가운데 하나인 강력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다루는 과학사 책이다. 방사선의 발견, 원자 구조에 대한 연구, 양자 역학, 뮤온, 글루온 등등 근원 입자들을 발견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는 한데, 정작 강력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즉 입자 물리학 과학사에 가까운 책이다. 또다른 아쉬운 점은 강력 발견 과학사의 절반까지만 설명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후속작을 암시하며 끝난다는 점이다. (!) 그 점을 제외하면, 강력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교양 과학서가 흔치 않다는 점에서 한 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흐르는 것들의 역사 (★★★★✩)
유체역학을 다루는 교양과학서이다. 유체 역학은 사실 전문적인 주제여서 딱딱하게 흐르기 쉬운데, 이를 역사상의 유명한 사례들과 연결해서 설명한 점이 좋다. 보스턴 당밀 사건, 후버댐 건축, 타이타닉 침몰, 물수제비 폭탄 등등 역사상의 유명한 사건들과 공학적 업적이 어떻게 유체역학과 연결되는지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각 챕터별로 배경에 할애하는 시간이 조금 긴 편이다. 예를 들어 원자폭탄을 설명하면서 관련 역사를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는 식이다. 교양 과학서라기보다는 교양 과학 역사서 정도 포지션으로 두고 보면 괜찮을 것 같다.
나노 화학 (★★★★✩)
나노 레벨에서 다루는 화학을 다룬다. 사실 말만 나노지, 그냥 일반 화학에 가까운 내용이다. 분자 레벨에서 이루어지는 집합적 변화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분자 조각가들 : 타이레놀부터 코로나19 백신까지 신약을 만드는 현대의 화학자들 (★★★★★)
우리 삶 속에서도 익숙한 타이레놀이나 유명 항암제 글리벡, 그리고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에 이르기까지 “신약”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설명하는 교양 과학서이다. 단순히 약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자 측면에서 약을 제조할 때 현대 의학과 화학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는지를 다루는 점이 좋았다. 단백질, RNA, DNA 등등 여러가지 영역을 다루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수면제 파트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신약 제조에 얽힌 화학에 대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주로 식품과 관련된 일상 생활 속의 화학 지식을 다룬 가벼운 교과서이다. 예를 들어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는 정말로 몸에 해로울까?”와 같은 이야기를 다룬다. 깊이는 조금 얕은 편이지만, 가볍게 읽을 화학 교양서로는 좋다.
익스트림 물리학 (★★★★✩)
중국 교양과학 작가가 쓴 책으로, “극”(extreme)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상대성 이론과 각종 현대 물리학 및 천문학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사실 책의 구성 자체는 괜찮은 편인데, 다루는 주제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학 등등)를 다른 책으로도 많이 접해보았더니 새로운 것이 없어서 중도 하차.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포하자면 결론은 “없다”인데 그걸 너무 길게 늘려서 쓴 책이다. 상대성이론과 제논의 역설, 양자 역학, 엔트로피, 초끈이론, 루프 양자 중력 이론, 우주 상수,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없다”라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현대 물리학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다. 물리학의 시간 개념에 관심이 많다면 흥미롭게 읽을법한 책이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화이트홀 (★★★✩✩)
개인적으로 카를로 로벨리의 책은 나랑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감각적인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더 알쏭달쏭하게만 다가오는 느낌이다. 화이트홀 역시도 수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다”정도의 이야기인데, 이걸 실험물리학의 아무런 증명 없이 책 한 권으로 써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과학 – 생물학
이토록 재밌는 면역 이야기 (★★★★★)
면역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 교양 과학 서적이다. 면역에 관계된 각종 세포들과 면역 기전들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깊이 있게 설명하고 있으며, 앞으로 항암의 최전선에 면역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도 알게 된 좋은 책이다. 일본의 유명 만화인 <일하는 세포>도 떠올랐다. 내용과 풍부함 면에서 추천할만한 교양 과학 서적이다.
생명과 약의 연결고리 (★★★★✩)
약학과 생물학의 경계를 다루는 교양과학서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다.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
소화기관에만 초점을 둔 교양과학서이다. 전문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을 다루지는 않지만, 소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각 기관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꽤 괜찮았던 책이었다. 추천!
심장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
심장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교양 과학서이다. 심장의 해부학적 기능과 폐쇄 순환계가 어떻게 “발견”되었나, 동물과 곤충들은 어떤 심장 기능들을 가지고 있나 그 차이점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는 책이다. 지렁이는 심장이 5개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고, 책의 도입부에서 나왔던 거대한 고래 심장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고래, 지렁이, 곤충을 비롯한 각 생물들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심장을 발달시켜왔는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기능상의 차이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식물의 발칙한 사생활 (★★★★✩)
식물들을 다룬 교양 과학서이다. 피톤치드나 식물의 생식 전략 등등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며, 깊이는 다소 얕은 편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 (★★★★★)
식물이 발생하고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생화학적 일들이 발생하는지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쓴 책이다. 특히 광합성과 각종 단백질 및 호르몬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쉽게 설명하는 점이 좋다.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식물학 책을 원한다면 추천!
식물의 사회생활 (★★★★✩)
식물학을 다룬 교양 과학서이다. 교양서와 전문서의 사이에 있는듯한 책인데, 특히 애기장대를 비롯해서 현대 식물학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이었다. 다만 다른 식물학 책에서 보았던 내용들과 비슷한 내용들이 많아서 참신함은 조금 떨어지느 느낌이었고, 다소 지엽적이고 전문적인 설명이 많아서 독해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조금 더 대중적인 교양과학서를 원한다면 <이일하 교수의 식물학 산책>이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세포 (★★★★★)
대부분 교양 과학 서적들은 얆고 넓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든 책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흔치 않게도 “세포”라는 딱 하나의 주제에 대해 무척 깊게 파고들면서, 교양 과학의 수준에서 설명하는 균형을 잊지 않는 책이다. 근육 세포로 흔히 알려진 액틴과 마이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세포 소기관은 어떻게 발생하고 분화하는지 등등 세포에 대한 많고 다양한 주제를 흥미롭게 잘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 깊이 있는 교양 과학 서적을 읽고 싶면 추천한다.
만화로 배우는 공룡의 생태 (★★★★✩)
“갈로아”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도윤이 공룡과 진화론을 만화로 쉽게 풀어낸 교양 과학서이다. 중간중간 연출과 서사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만족스럽게 읽었다.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후성유전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후성 유전학의 핵심은 히스톤기와 메틸기가 어떻게 유전자를 활성화하고 비활성하는지인데, 책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점이 좋았고, 책을 통해서 기존의 DNA나 RNA만이 아니라, 히스톤기와 메틸기까지 포함된 전체 “유전체”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추천!
굿 이너프 (★★★★★)
다윈이 사용한 표현 중에서 역사상 가장 큰 오해와 혼란을 낳았던 표현이 “적자 생존”(survial of the fittest)이다. 사실 이 표현은 다윈이 만든 단어도 아니다. 다윈의 불독이라 불렸던 헉슬리가 사용했던 표현이었는데, 이를 다윈이 받아들이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 표현의 가장 큰 문제는, 자연은 1등만 살아남는 가혹한 생태계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경쟁과 억압의 정당화, 더 나아가서는 인종간의 우열이나 우생학의 탄생을 가져오는 비극적 결과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이 책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탁월성(excellency)이 충분함(enough)과 같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자연에서 살아남는 것은 1등 한명만이 아니라, 어느정도 적당해도 (good enough) 충분히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그것이 종의 기원에서 원래 의도했던 “survival of the fitter”와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책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다윈의 핀치나 기린은 일종의 극단적인 예화이며, 자연에서는 뿔매미나 사슴의 뿔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설명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유감스러운 생물, 수컷 (★★★✩✩)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다만 깊이가 좀 부족했다고 느꼈고, 저자 개인의 사견 혹은 편견처럼 보이는 내용들은 그다지 공감하기 힘들었다. 나는 일부일처제의 등장이 필연이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이런 면에서 모든 인간 아이들이 미숙아인 상태로 태어나고 여성의 불륜이 왜 생겨나는지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굿 이너프>가 이를 더 잘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
진화에 대한 책이다. 흥미롭게도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도시 토끼까 왜 그렇게 많아졌는지로부터 시작해서 저자 본인이 가졌던 스트레스와 연구원 생활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생물학과 심리학, 진화론과 스트레스와 관련된 연구의 기원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책인데, 중간에 다소 채워넣기 같은 느낌이 나는 챕터들이 있었다.
곰팡이, 가장 작고 은밀한 파괴자들 (★★★★✩)
곰팡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과학 교양서이다. 이 책은 곰팡이의 일종인 바나나마름병이나 감자마름병과 같이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곰팡이들과 함께 많은 개구리들을 멸종으로 이끌어간 항아리 곰팡이, 그리고 박쥐들을 멸종 위기로 몰고 있는 흰코증후군 곰팡이를 다루고 있다. 곰팡이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는 워낙 기전이 달라서 통하는 약물도 항진균제 정도로 한정적이라는 점 떄문에, 다음번 판데믹이 발생한다면 아마 곰팡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
과학 – 생태학
지구의 마지막 숲을 걷다 (★★★★★)
이 책은 지구 북부의 한계 수목림을 중점적으로 다룬 생태학 책이다. 북부의 한계수목림에 어떤 나무들과 동물들이 사는지, 그리고 지구 온난화가 그곳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인지 등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적응하지 않는 생물들은 결국 도태되어 밀려나리라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책의 한 챕터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즉 백날 학회장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해 떠드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며 그린란드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수목림을 조성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저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생태학 책을 좋아한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여담이지만, 북부 한계 수목림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영도의 유명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한계선이 떠올라서 흥미로웠다.
최재천의 곤충사회 (★★★★✩)
최재천은 워낙 유명한 학자이자 저자, 강연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의 강연들을 묶어서 낸 책이다. 그런데 사실 책의 짜임새에 빈틈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간중간 토픽의 전환이 갑작스럽고, 작은 덩어리로 되어 있는 에피소드들은 많은데, 이를 통합적으로 하나의 내러티브로 이어나가는 힘은 떨어진다고 느꼈다. 강연을 베이스로 책으로 옮겨서 그럴수도 있으려니 싶다. 또한 개인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어떻게 학자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연구를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들이 많은 편이다. 다만 여기에도 조금 결점이 있는데, 이런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나라는 통로를 통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점에서 전달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 점을 제외하고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는 괜찮은 편이다.
과학 – 교양 일반
아더랜드 (★★★★★)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빅 히스토리 책이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지질 시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면서 그때 지구상에는 어떻게 생긴 생물들이 살았는지, 지구의 지형과 기후들은 어땠는지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고대 생물들이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무엇이 멸종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에 생물상이 어떻게 바뀌어 나갔는지를 설명하는데, 마치 인류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빅 히스토리 및 고대 생물들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우유의 역사 (★★★★✩)
우유의 역사를 다룬 교양 과학서이자 일종의 인류학 책이다. 우유의 유통에 마피아의 공로가 컸다는 (?) 사실이 흥미로웠다. 우유에서 파생된 각종 유제품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다룬다. 다만 지엽적인 세부사실을 나열하느라 재미없게 쓰여진 부분들 (특히 아이스크림 파트)이 조금 아쉽다.
비커 군과 실험실 친구들 (★★★★✩)
과학 실험실의 실험도구들에게 만화적 일러스트와 캐릭터를 부여하여 이들의 역할을 설명하는 교양 과학 서적이다. 이 책을 통해 과학실에 무척 많은 실험 도구들이 있다는 것들, 그리고 그 각각의 역할과 특성들이 무척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커, 플라스크 등의 역사와 역할 그리고 특성들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비커 군과 실험기구 선배들 (★★★★✩)
<비커 군과 실험실 친구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인데, 지금이 아닌 조금 더 예전에 쓰였던 실험 도구들을 다루고 있다. 역시 좋은 교양 과학서이다. 추천!
볼트와 너트, 세상을 만든 작지만 위대한 것들의 과학 (★★★★✩)
현대 인류 사회를 이루는데 큰 도움을 준, 작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았던 공학적 성과물들을 다루는 책이다. 못부터 시작해서 볼트와 너트 등등이 건축과 공학에 얼마나 튼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건축을 주로 다룰 줄 알았는데 다른 주제들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은 교양 과학서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따면 <빌트>도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야밤의 공대생 만화 (★★★★✩)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각종 물리학, 공학 및 수학 역사상의 인물들과 그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다루는 만화책이다. 사실 크게 새로운 내용들은 없었는데,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책이다.
엑스맨은 어떻게 돌연변이가 되었을까? (★★★✩✩)
제목은 그럴듯한데 토픽만 영화나 만화 같은 것에서 따왔을 뿐 내용은 그냥 평범한 교양 과학서이다.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
약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풀어나가는 교양 과학서이다. 약을 주제로 한 다른 교양과학서들에 비해 특별히 새로운 내용들은 없었지만, 비교적 차분한 톤으로 잘 설명하는 것이 장점이다.
리스크의 과학 (★★★★★)
나는 “운”이란 한 개인이 스스로의 인생에서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입사에 성공하는 것, 암에 걸리는 것 등등 개인의 인생에서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은 무척 많이 있다. 하지만 그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도 계획하고 관리할 수는 있다. 나는 그것이 리스크 관리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입사 성공 여부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여러 회사에 지원하면 성공을 관리할 수 있다. 암 역시도 예방과 생활 습관 변화를 통해 줄여나갈 수 있다. 그런데 직업 자체에 리스크가 내포된 경우도 있다. 남들보다 실패 위험이 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서는 직업 자체에 내재된 리스크를 사람들이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무척 흥미로운 사례들을 많이 다룬다. 즉 파파라치, 서퍼, 경마 사육자, 포커 세계 챔피언, 사창가 스트리퍼, 영화 제작자와 같이 이른바 “실패의 비용”이 너무나 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테일 리스크(tail risk)를 관리하는지를 다루는 책이다.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배운 경험들이 내 업무에서의 리스크 설계에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연에 가려진 세상 (★★★★✩)
사고실험을 바탕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코펜하겐 해석에 의지하지 않는 새로운 준거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꽤 흥미로웠는데, 아쉽게도 전자책으로 읽다보니 책의 절반 이후부터는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공식도 교양 과학서의 수준에서는 다소 높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우리가 살찌기를 바란다 (★★★★★)
우리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하는 책이다. 책에서는 크게 2가지, 과당(프럭토스)과 염분으로 인한 탈수 증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근거로 가을에 잔뜩 당분을 섭취해서 겨울잠을 준비하는 동물들과 사막에서 수분을 얻기 위해 혹에 살을 찌우는 낙타를 근거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비만은 자연의 관점에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점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즉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솔루션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만 이것이 현대인의 생활 습관과 맞지 않아 몸에 거짓 알람 신호를 보내는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과당은 독이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당분과 염분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흘렸는데, 그것이 왜 좋지 않은지 논리적으로 설득되니 더 이상 입에 가져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습관처럼 먹던 초콜릿과 과자, 그리고 탄산 음료를 완전히 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자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짓말처럼 5kg가 빠지게 되었다. 비만에 얽힌 과학이 궁금하고, 어떻게 식단을 조절해야 할지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
원제는 “How music works”인데, 음악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왜”라는 질문에 최대한 과학적으로 대답한 교양 과학서에 가까운 예술서이다. 즉 무엇이 음악을 구성하고, 무엇이 다른 음색을 만들고, 왜 반음 화성이 귀를 거슬리게 하며, 왜 장조는 밝기 들리고 단조는 구슬프게 들리는지 등등을 훌륭하게 설명하는 교양 음악서이다. 다만 책에서 등장하는 음표나 악상기호, 조성 등에 대한 챕터는 없어도 될만한 내용인 것 같았다.
매스프레소 : 세상을 바꾼 수학 개념들 (★★★✩✩)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 나무위키 수준의 교양 수학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던 책이다.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지리 교과서 (★★★★✩)
지리에 대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는 지리 교양서이다. 쾨펜 기후는 무엇이고, 각 기후대별로 어떤 특성이 나타나며, 지구의 어느 지방이 이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가득 담고 있다. 문제는 각각의 토픽들이 분절되어 있고, 이를 하나로 묶는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아서 마치 교과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이 점이 좀 아쉽지만, 전반적인 지리학에 대해 궁금하다면 괜찮은 교양서이다.
물질의 세계 (★★★★★)
현대 사회를 떠받치는 6가지 주요한 물질이 있다.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그리고 리튬이 그것이다. 이 책은 이 물질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통제되며, 어떤 공정을 거쳐서 가공되어 활용되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하며 설명하는 책이다.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모래 파트는 <모래가 만든 세계>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블루 머신 (★★★★★)
이 책은 바다를 중점적으로 다룬 해양 물리학 책이다. 책에서는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한다. 즉 바닷물이 어떻게 수온과 염분에 따라 수괴로 분리되면서 해류를 형성하는지, “해설”이라고 불리는 영양소들이 어떻게 탄소의 순환에 기여하는지, 깊은 바닷물이 섞여서 영양소가 해양으로 올라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등등을 무척 흥미롭게 잘 설명하는 책이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모여서 바다는 일종의 폐쇄형 엔진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그것이 책 제목에서 말하는 “블루 머신”이다. 해양을 무척 자세한 주제로 다룬 책으로, 바다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최상의 잠 (★★★★✩)
“수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룬 책으로, 연구보다는 주로 임상학적인 수면 장애 진단을 다루고 있는 점이 특이한 책이다. 철분 부족에서 비롯되는 하지 불안증 등처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유로 수면장애가 생긴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단순히 이러한 수면장애를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점을 조심해서 살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추천!
기술
공방학개론 (★★★✩✩)
수제로 제품을 소규모 가내수공업으로 생산하는 이른바 공방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실제적인 책이다.
괄호로 만든 세계 (★★★✩✩)
인공지능의 역사, 그리고 이른바 2번의 “인공지능의 겨울”을 다루며 딥러닝까지 조망하는 책이다. 다만 트랜스포머 이후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보니, 시대에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 간략히 역사를 살펴보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책이지만, 지금 읽기에는 조금 뒤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개발자 기술 면접 노트 (★★★✩✩)
개발자 기술 면접을 처음 배워가는 사람이라면 조금 도움이 될 법 한데, 다소 넓은 범위에 비해 깊이가 얇은 편이다. 시스템 디자인상 고려할만한 요소들을 다루고 있는 점도 좋다.
Software Project Survival Guide (★★★★✩)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전반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내부 프로젝트들을 베이스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일반적인 책인지라 큰 규모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다룬다면 한 번씩 살펴볼법하다. 이 책에서 가장 내 경험에 와닿았던 부분은 요구사항 개발(requirement development)를 초반부에 시작하고 가급적 마쳐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의 나중 단계에서 요구사항을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또한 우리 팀의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쓰였던 여러 팀들 간의 수정사항을 조율하는 기구인 change control board (CCB)가 이 책에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 도입해볼만한 점은 Top 10 risk list인데, 나 역시도 프로젝트의 각종 변경점들로 인한 스케쥴 리스크와 가능성 리스크를 수없이 평가했던 입장에 있었던지라, 앞으로 도움이 될법한 중요한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한다.
항공모함의 과학 (★★★✩✩)
항공모함의 각종 구성 요소들과 운영에 대해 자세히 다룬 책이다. 각각의 주제들이 다루는 깊이는 꽤 깊은 편인데, 아쉬운 점은 정보를 나열해놓기만 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서사가 없다는 점이다. 즉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설계가 등장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면 더 책의 내용이 좋아지고 풍성해졌을 것 같다.
문학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은 이야기에 끌린다. 그것이 타인의 실제 이야기이든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허구의 이야기이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리고 매력을 느낀다. 그 이유는 바로 독자가 주인공을 통해서 대리체험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대리체험의 정점은, 독자가 실제적인 물리적 위협 없이도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호랑이에 대해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고 집으로 찾아오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를 듣게 되면 호랑이의 위협에 대해 훨씬 더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통한 대리체험과 자동적인 공감 능력이 인간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인류 문명 시작부터 이야기가 구전되어 내려온 것이라 본다. 책에서는 독자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통해서, 특히 산문 문학을 통해서 사물을 시각화하고, 주인공의 감정을 느끼며, 주인공의 고통을 간접 체험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첫 작가들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과, 이야기를 구성할 때 플래시백과 전조 등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씩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어떤 소설은 재미있었고 왜 어떤 소설은 재미 없었는지 그 이유를 해석할 줄 아는 안목이 생긴 것 같다.
예술
아트토크 머니토크 (★★★★✩)
갤러리, 작가, 아트 페어, 그리고 우리나라 미술품 시장의 고찰을 담은 책이다. “돈”을 주제로 한 꽤 흥미 있는 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미술품의 소유 내력과 진품 여부의 불투명함, 가격 탄력성이 없는 사치재라는 점에서 미술품 시장은 다른 시장과도 무척 다른 독특한 시장이 아닐까 싶다.
미술관에서 만난 범죄 이야기 (★★★★✩)
미술은 인류사의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범죄”에 초점을 맞춘다. 살인, 강간, 매춘 등등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명백한 범죄로 인식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와 관련된 회화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술이 바라본 인류사의 어두운 면을 살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아트 컬렉팅: 감상에서 소장으로, 소장을 넘어 투자로 (★★★★✩)
최근 아트 시장의 특색은, 소수의 부자들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MZ 세대들까지도 넓게 활성화가 되어 있는 점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아트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사람들이 왜 구매하는지, 그리고 갤러리를 중심으로 어떻게 아트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폭넓게 다루는 책이다. 꽤 흥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나는 아트 시장이 무척 불투명한 시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 갤러리, 그리고 큐레이션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나온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쿠사마 야요이 – 강박과 사랑 그리고 예술 (★★★★✩)
쿠사마 야요이의 삶을 그래픽 노블 형태로 풀어낸 전기이다. 깊이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픽 노블 형태이다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그렇게까지 높은 값을 받을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클림트를 해부하다 (★★★✩✩)
클림트 작품이 “발생학”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다만 그림의 일부 해석에 대해서는 너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끼워맞추는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중간의 사회 역사적 배경 파트는 다소 지루했다.
다시 그림이다 (★★★✩✩)
호크너와의 인터뷰를 엮어낸 책이다. 그의 작품 세계와 그림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졌다. 즉 편집 없이 잡지 인터뷰들을 통으로 잘라서 그냥 붙여넣기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영화가 사라진다 (★★★★✩)
넷플릭스 등의 OTT가 한국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심도있게 분석하는 책이다. 영진위의 역할과 같은 내용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향후 OTT의 미래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에세이
오독의 즐거움 (★★★★✩)
이 책은 일종의 책 샘플러이다. 저자가 읽었던 수십권의 책들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과 평가 그리고 감상을 이야기한 책이다. 투자와 주식 분야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독서를 즐기는 분이라면 “아 이 사람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법하다. 마이클 샌델을 까는 점이라든지,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부분들이 많아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완벽에 관하여 (★★★✩✩)
책 제목이 끌려서 읽어보았는데,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 책이다. 저자는 목수이자 건축가인 일종의 장인인데, 그가 직접 전하는 “마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마스터 클래스 책이다. 다만 마스터리 그 자체보다는 개인의 인생사가 너무 많은듯했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그 각각의 스토리들이 필요에 따라서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중도 하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