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추천합니다.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개인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추리 소설
-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밤새 끝까지 읽어버린 소설입니다. 저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는 배경, 인물,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소설의 균형이 깨지죠. 그런데 이 소설은 그 3요소가 황금 비율로 잘 어울립니다. 첫째는 배경입니다. 소설은 인공지능이 전쟁과 질병, 빈곤과 같은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미래로부터 시작합니다. 문제는 노화와 죽음도 해결해버렸다는 점이죠. 하지만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기 때문에,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일정 수의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를 다루는 사람들이 바로 <수확자>로서, 임의의 사람들을 선택해서 목숨을 거두는 권한을 부여받죠. 둘째는 인물입니다. 소설에서는 새롭게 수확자가 되는 시트라와 로언이라는 매력적인 두 주인공들과, 패러데이, 퀴리와 같은 주변 인물들, 고더드라는 강력한 빌런, 음파 교단과 같은 흥미로운 집단이 등장합니다. 셋째는 사건이죠. 주인공들의 성장과 변화를 정통적으로 다루는 성장물로 시작하지만, 규칙을 깨는 수확자들로 인해 점점 사건이 커지게 됩니다. <수확자> 시리즈는 이러한 요소들을 잘 버무려낸 훌륭한 영 어덜트 SF 소설입니다. 다만 로언이 공주님처런 잡혀있다가 탈출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점, 빌런들이 좀 더 임팩트 있게 사건을 끌고나가지 못한 점, 그리고 3부의 다소 생뚱맞은 결말을 보면, 작가가 마무리를 제대로 구상하지 않고 쓰기 시작했나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이런 단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와 진행이 탄탄해서 한 순간도 손에서 놓기 힘든 책이기도 합니다. 영 어덜트 SF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울 / 시프트 / 더스트 (휴 하위): 애플tv 드라마로도 나온 <사일로>의 원작 소설입니다. 첫 소설 <울>을 자비 출간한 뒤, 입소문만으로 킨들 1위에 오르는 등 엄청난 화제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죠. 세계관과 인물들이 매력적인 SF 소설입니다. 사실 디스토피아 세계관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만, 그에 얽힌 미스터리를 긴장감있게 풀어나가는 스토리텔링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문제를 능동적으로 해결할 줄 아는 엔지니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는데요, 여러모로 앤디 위어의 <마션>을 떠올리게 만든 소설입니다. 다만 문체와 행동 묘사 부분이 다소 장황한 편이고, <시프트>에서 기존에 설명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는 부분들은 감점 요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세계관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솜씨와 마지막 <더스트>까지 이르는 긴장감 있는 전개와 장르적 쾌감이 느껴지는 결말이 대단하기 때문에, SF 팬이라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시간을 메인 테마로 다룬 SF 단편집입니다. 시간여행과 스테이지 마술을 다룬 <마술사>와 냉전 시대의 스파이 전쟁과 타임 리프를 다룬 <거짓과 정전>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책입니다. 훌륭한 설정과 트릭, 긴장감 있는 진행, 그리고 단단한 짜임새가 장점인 소설인데요, 대부분의 단편들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한 결말이라는 점이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영도의 단편들을 좋아한다면 취향에 맞으시리라 봅니다.
- 산마처럼 비웃는 것 (미쓰다 신조): 호러 미스터리의 거장 미쓰다 신조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사건의 진상이 확실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호러 보다는 탐정물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노부요시가 성인식을 맞아 ‘흉산’이라 불리는 산을 참배하던 중 기이한 일에 휘말리고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초반부의 공포 묘사가 상당해서, 밤에 읽으면 등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책의 중간에 명탐정 “도조 겐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탐정물로 전환되고 연속 살인사건까지 발생하며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듭니다. 중간중간의 추리 반전이 꽤 인상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어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호러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세스지):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처럼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공포 소설입니다. 긴키 지방의 한 산을 중심으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각종 인터뷰와 기사들을 통해 이 산에 대한 비밀을 조금씩 풀어나가며 독자의 스멀스멀한 공포감을 자극시키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미쓰다 신조의 공포 소설을 좋아한다면 취향에 무척 잘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로도 최근에 개봉했습니다.
- 열대 (모리미 도미히코): 환상적인 분위기의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환상적인 요소가 현실 속에 대담하게 놓여있는 것이 모리미 도미히코 작품의 특징인데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끝까지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알려진 “열대”라는 신비로운 책이 등장하며 시작됩니다. 하지만 중간까지 읽고 나면 책이 어느덧 사라져서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됩니다. 이윽고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이 서로의 기억을 모아서 책의 내용을 재구성하게 되는데요, 그 와중에서 사람들이 한명씩 사라지게 됩니다. <인셉션>과 유사한 다층적인 메타픽션이 무척 인상적인 작품인데요, 어디까지가 이야기이고 아닌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에 무척 충실한 헌정작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읽으면서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루팡의 딸 (요코제키 다이): 대도 루팡의 딸 하루코가 경찰 남자친구 카즈마와 교제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러브 코미디 탐정물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흥미로운 설정과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1권의 경우, 미스터리가 조금 약하고 클라이맥스의 박력이 부족한 편이었는데요, 후속작들도 다소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1권만으로도 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드라마와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조예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정평이 난 조예은의 미스터리 + 스릴러 + 청춘 + 로맨스물입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넘어갔다가 큰 위험에 빠진 화영의 앞에, 난데없이 도끼를 들고 테디베어 인형이 나타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화영은 복수를, 곰 인형은 자신의 몸을 찾기 위해 서로를 돕기로 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죠. 캐릭터 조형이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이 있지만, 전반적인 짜임새가 탄탄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입니다.
- 복수의 협주곡 (나카야마 시치리):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는 어렸을 때 잔혹한 유아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라는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인물입니다. 이런 배경 설정을 가진 주인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 요코가 어느날 협박 사건에 휘말리고, 관련자가 살해당하면서 감옥에 가게 되죠. 그리고 미코시바가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 나서는 독특한 설정의 추리 소설입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케미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과거의 사건이 다소 맥거핀처럼 처리된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요, 후속작에서 진상이 드러날지 궁금합니다.
- 호텔 피베리 (곤도 후미에):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살인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재방문은 받지 않는다”는 독특한 규칙을 가진 호텔에 다섯 명의 여행자가 장기 투숙하는데, 어느 날 투숙객 한 사람이 익사한 채 발견되면서 불안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살인과 미스터리 트릭보다는 드라마와 인물들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둔 소설인데요, 저도 예전에 방문했던 하와이 특유의 분위기와 느낌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점이 좋았던 소설입니다.
- 더블 (정해연): <홍학>으로 유명한 정해연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사이코패스 살인범 대 사이코패스 살인범이라는 구도 속에서, 뜻하지 않게 살인범으로 몰리게 된 살인범(!)의 심리를 잘 묘사한 점이 장점인 소설입니다. 이러한 대립 구조는 작가가 최근작 <홍학>에서도 잘 보여주었죠. <더블>은 초기작이어서인지 구성이 허술한 부분들이 있지만, 담백하게 등장인물들의 시선에서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는 점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믿고 읽는 정해연 작가의 신작입니다. 어떤 비밀을 간직한 고등학교 3인방이 차례차례 생명의 위협에 처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범인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어서 큰 반전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사건의 연속이 인상적인 스릴러입니다. 긴장감있는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추천합니다.
- 킬러스 와이프 (빅터 메토스): 재미있게 읽은 탐정 및 법정 스릴러입니다. 여검사 제시카 야들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와 <미키 할러 시리즈>를 읽어보셨다면 둘을 합쳐 놓았다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저자 본인이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법정 묘사가 정확한 것이 장점입니다. 다만 ‘연쇄 살인마의 아내’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과, 마지막 반전의 정체를 주인공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캐릭터의 매력을 깎아먹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좋은 책이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시즈카 할머니와 은령 탐정사 (나카야마 시치리): 전직 판사인 시즈카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탐정 소설입니다. 겐즈루 할아버지와의 케미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독립적인 에피소드들로 진행되는데요, 코지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경계를 잘 잡은 것 같고, 복잡한 트릭 퍼즐에 집착하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가볍게 읽을 탐정 소설로 추천합니다.
- 부스러기들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아무도 없는 무인 요트가 항구에 도착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생명보험 변호사인 주인공은 이 보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진상에 접근하죠. 배에 아무도 없고, 주인공이 보험조사원이라는 점에서 유명 인디 게임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을 떠올렸는데요, 과거의 사건들과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 교차 편집되는 구성이 무척 긴장감 넘칩니다. 다만 엔딩이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편입니다.
- 내 시간을 돌려줘! (김현수): 하루가 23시간인 준우가 반대로 하루가 25시간인 효빈과 만나면서 시작되는 영 어덜트 소설입니다. 시간 여행, 로맨스, 청소년 성장물이 결합된 소설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물들은 다소 전형적인 면이 있었고, 청소년 소설의 특징상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모두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캐릭터 변화와 성장 부분들이 마음에 들어서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 소녀, 감빵에 가다 (최구실): 꽤 재미있게 읽은 청소년 소설입니다. 중학생 신희진은 마약을 거래하다가 10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지박령을 만나게 되죠. 보통의 청소년 소설과는 달리 인물들의 내면 심리 묘사가 자세한 편은 아니지만, 인물들과의 관계가 꽤 흥미롭게 그려져 있어서 성격과 행동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빌런의 임팩트가 다소 약했고, 티키타카의 재미에 비해 인물들의 성장이 다소 급작스러운 느낌인 점이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흡인력 있게 끝까지 읽은 성장물입니다.
- 말하고 싶은 비밀 (사쿠라 이이요): 고등학교 방송부원으로 활동하던 여고생 구로다 노조미는 어느날 “좋아해”라는 말이 적힌 짤막한 러브레터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수신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장면이 꽤 흥미를 자아냅니다. 에둘러 거절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교환 일기 비슷한 형식으로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연애의 감정이 싹트게 됩니다. 오해물 + 성장물 + 청춘 연애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가벼운 틴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사회
- 썰의 흑역사 : 인간은 믿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톰 필립스): 시대가 시대인지라, 정치적인 책들은 무겁기 읽히게 마련입니다. 다행이 이 책은 저자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위트있게 쓰여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음모론(conspiracy)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각종 매체에서 악의 근원(?) 처럼 묘사되는 “일루미나티”가 어떻게 거대한 음모론의 근원이 되었는지 탐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가깝게는 백신도 음모론의 화두에 오르고 있죠. 이러한 음모론은 사실 인류 진화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단편적인 개개의 사실들을 모아서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능력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음모론으로 시작했지만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는 점이 인류사에서 이러한 음모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 만은 없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이 사회에서 횡행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더 합리적이고 덜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공포에 민감한지, 사람들이 사회 시스템 그리고 타인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깊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 읽은 책으로, 음모론이 왜 탄생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축! 국회의원에 당첨되셨습니다 (이지문): 국회의원을 욕하기는 쉽습니다. 지역구와 다음 선거에만 관심이 있는 의원들, 소신이 아니라 당리당략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들, 잊을만하면 터지는 정치자금 스캔들, 그리고 헐뜯고 싸우고 투쟁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고자 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민주주의가 가진 한계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시스템의 결함을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해서 해결하는 것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여당과 야당의 끝없는 싸움은, 우리가 나쁜 사람들을 뽑아서 그런것이 아니라, 정치 체계가 잘못 설계되었기 때문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죠. 이 책에서는 현행 선거제도가 가진 수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배심원제와 유사한 추첨식 의원직에 대해 논의합니다. 선거가 아니라 국민들 중에 추첨으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거에 의존한 의원제가 가지는 많은 문제들, 즉 선거 자금이나 이해 관계의 충돌 등등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전문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현행 국회의원들 역시 입법사무관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문적인 법률에 대해서는 전문 사무관의 도움을 얻어서 작성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제안으로, 처음부터 전면적으로 확대하기는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지방 의회에서 작게 도입하여 효과를 검증해보며 개선해본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치 시스템의 개선과 대안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돼지 복지 (윤진현): 우리나라에서도 동물 복지가 본격적인 수면 위로 오르고 있는데요, 이 책은 특별히 돼지 농장의 복지에 대해 다룹니다. 저자가 수의학과 학생 시절 견학한 돼지 농장의 비참한 실태의 묘사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핀란드에 유학까지 가게 된 계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돼지 농장에서 돼지를 잘 대해주자”는 구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돼지 농장이 산란장, 육성장 등으로 어떻게 구분되어 있는지, 슬러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슬랫 구조가 어떤 문제를 가져오고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새끼 돼지가 압사당하는 등등),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기구들이 왜 복지에 반하게 되는지, 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돼지가 최대한 편안한 환경에서 자라기 위해서 어떤 방안이 있을지 다양한 고민들과 연구 결과들을 공유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장기적으로 이런 동물 복지에 더욱 많은 자원을 쏟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구요. 동물 복지와 개선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뭐든 다 배달합니다 (김하영): 배민이나 쿠팡, 카카오 대리운전과 같은 이른바 플랫폼 노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체험기입니다. 현장 밀착 취재기에 가까운 책인데요, 저자가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무척 현실적인 글들을 조리있게 잘 구성한 책입니다. 중간중간 인공지능과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개인적인 단상들도 다룹니다. 배민 라이더를 하며 살이 쭉쭉 빠진다는 이야기,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사고 소식들이 가슴에 와 닿았고, 이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긱(gig) 노동의 현장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골목의 약탈자들 (장나래):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죠. 그 숫자만큼이나 폐업율은 높기만 합니다. 그 빈틈을 노린 “자영업 컨설팅”이라는 상어들이 있습니다. 권리금을 담보로 정보 비대칭을 이용해서 사기에 가까운 매장 매매를 통해 돈을 버는 업계인데요, 이 책은 한겨레 기자인 저자가 직접 자영업 컨설팅 업계에 잠입 취재해서 그 민낯을 폭로하는 책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돈이 없는 누군가를 노려서 돈을 버는 상어들이 있다는 사실이 꽤 충격적이었던 책으로, 자영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한국의 능력주의를 다룬 책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엘리트 세습>(Meritocracy Trap)과 같은 책이 서구의 엘리트주의, 능력주의, 그리고 번아웃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책이라면, 이 책은 한국만의 독특한 능력주의의 역사를 파고드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서양과는 다르게 한국에만 있었던 독특한 “과거 제도”를 이야기하며, 이것이 한국적 능력주의의 큰 틀을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것이 사법고시, 수능시험을 비롯한 “시험주의”로도 이어져 내려왔죠. 그런 면에서 한국의 능력주의는 “공정(fairness)”을 추구하면서도, “불평등(inequality)”을 긍정한다는 점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즉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참지 못하며, 승자 독식은 참아도, 기여 입학과 같은 치팅 행위는 참지 못하죠. 이는 예리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법시험의 부활을 찬성하는 사람이 70%에 이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시험과 능력, 그리고 성공이 시대를 내려오는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이 서구의 능력주의와 가장 큰 정서상의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한국은 계급을 긍정하고 내면화한 계급사회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의 능력주의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불공정하지는 않으니까요. 책에서는 이에 대해 핵심적인 통찰을 내어놓는데요, 그것은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점입니다. 즉 능력주의가 가져오는 결과의 불평등은, 또다른 불평등을 낳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회성 불평등과는 결을 달리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되어가고,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들고, 엘리트의 집안에서 엘리트가 나오는 구조가 고착되어가는 원인이라고 봐야겠지요. 훌륭한 책으로, 북클럽 등에서 다루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실직 도시 (방준호): 이 책은 군산을 다룹니다. 특히 군산 GM 공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했던 정규직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꽤 무거운 주제임에도, 서글프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조망하듯 담담하게 설명한 점이 좋았는데요, 취재기 혹은 르포의 느낌이 강하게 나는 책입니다. 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한국 지방 도시의 흥망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역사
- 재판으로 본 세계사 (박형남): 세계사에서 의의가 있었던 주요한 10가지 재판을 다루며, 해당 재판의 의미와 파장을 뒤돌아보는 책입니다. 소크라테스 재판, 사일럼 마녀 재판, 미국 대법원의 “헌법 재판” 및 법들 사이의 우위를 결정하게 된 재판, 미란다 재판 등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재판들을 일반인의 시각에 맞추어 잘 설명한 책입니다. 훌륭한 판결뿐 아니라 그렇지 못했던 판결까지, 판결이 가지고 온 사회적 파장, 법 이론과 해석, 그리고 적용 범위 등 고민하고 고찰해보아야 할 흥미로운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법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스니커즈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을까 (박상우): 스티커즈의 탄생과 발전에 얽힌 미시사를 다룬 책입니다. 스티커즈의 역사가 고대 로마보다도 훨씬 이전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신발 역사의 3가지 중요한 발명, 캔버스 천, 고무창, 에어가 어떻게 등장했는지, 나이키가 에어 조단을 통해 어떻게 스니커즈 제국을 이끄는 거대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었는지 등을 흥미롭게 설명하는 책인데요, 스니커즈에 얽힌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에드워드 브룩-히칭): 역사상에 있었던 말 그대로 각종 기서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사람의 가죽으로 만든 책, 죽음을 부르는 책, 너무 길어서 모터로 넘겨봐야 하는 책, 거짓말로 된 책 등등 온갖 기이한 서적들을 소개하는 책으로, 희귀도서에 관심이 많다면 재미있게 읽어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벤저민 카터 헷): 이 책은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히틀러 정권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그리는 책입니다. 나치 정권이 세계 1차대전의 패전 후유증이라는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떻게 부상하게 되었는지, 비례대표제도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취약했던 바이마르 민주주의 정권이 어떻게 나치와 손잡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담담하고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지엽적인 세부사항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어렵지 않게 읽힐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무서웠던 점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스템상의 결함 때문에 나치 정권이 탄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즉 규정이나 법에 어긋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치 정권이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느시대라도 나치 정권과 비슷한 주장, 즉 불평등의 원인을 유태인이나 이민자와 같은 외집단에서 찾고, 자국인의 집단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최우선적 가치로 둔다면, 나치 정권이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즉 집단 공포 혹은 집단 광기가, 민중의 순수한 열망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점인데요, 이는 이 책의 원제인 “Death of Democracy”처럼 무겁고 어두운 화두이기도 합니다. 다소 어두운 책이지만, 한 번은 읽어보고 생각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심리
- 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에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윌 스토의 작품이어서 읽어봤는데, 역시 주제와 구성이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높은 지위를 갈망하는 생물학적 본성이 있습니다. 집단이 개인보다 훨씬 생존에 유리하기에 인간은 집단을 이루는 사회적 동물이 되었죠. 하지만 집단 내에서의 각 개인의 생존은 지위에 크게 좌우됩니다. 족장이 노예보다는 훨씬 생존에 있어 유리하겠죠. 이 책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위를 갈망하는지, 그리고 왜 서로를 헐뜯게 되는지 이야기합니다. 인터넷 상의 각종 싸움과 트롤링의 본질은 남을 깎아내리면서 느껴지는 심리적인 우월감에서 오는 지위 때문이고, 이것은 곧 사이비 종교에서 신자들에게 부추기는 지위 싸움과도 같은 맥락임을 책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유태인과 이민자로부터 “독일을 되찾자”는 구호로 부상한 히틀러의 등장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죠. 직장 내에서도 사람들은 지위를 원합니다. 연봉 인상이냐 아니면 동일한 연봉이지만 승진을 원하느냐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승진을 택합니다. 지위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그 이유일 텐데요, 그것은 높은 지위가 장기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는 감정이 DNA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위 게임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책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누구나 마지막까지 지위 게임에서 승리하거나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사장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만족할 수 없겠죠. 더욱 중요한 것은, 책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분류상으로는 인문학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심리학에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꽤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와일드후드 (바바라 내터슨 호로위츠): 인간의 청소년기는 모험과 실수, 실패와 어리석음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또래 집단 내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착취자에게 약탈당하고, 위험한 장난에 빠지고, 불필요한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수많은 동물들의 청소년기에도 똑같은 행동이 발견됩니다. 청소년 해달들이 상어로 가득한 몬터레이 바다로 모험을 떠나고, 청소년 초식동물들이 사자 앞에서 얼쩡거리며 풀을 뜯습니다. 이 책은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동물들이 똑같이 모험과 실수를 하며 배워나갑니다. 그렇게 누군가 모험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교훈을 얻고, 언제 포식자가 위험하고 위험하지 않은지 타이밍을 알게 되고, 부모의 보호막을 벗어나 집단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찾고 협상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게 됩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와일드후드”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이해하는 것이 청소년기를 준비하고 헤쳐나가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며,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하는 좋은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경제
- 더 박스: 컨테이너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바꾸었는가 (마크 레빈슨): 세계화의 이면에는 수많은 컨테이너선들로 상징되는 물류의 혁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컨테이너”에 집중해서 세계 물류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컨테이너가 없던 시절에는 배를 통한 운송에 무척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총 비용의 40%를 넘게 차지하기도 했죠. 항만 선적 및 하역 작업은 무척 비효율적이었고, 수많은 절도의 온상지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컨테이너를 통해 이를 표준화하기 시작하면서 운송 비용이 대폭 절감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컨테이너라는 표준화가 세계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가 항만 발전의 기회를 놓쳐 버렸으며, 우리나라의 부산항이 왜 이러한 컨테이너화의 대표적인 승자가 되었는지, 로스앤젤레스의 인부들이 기나긴 파업과 협상을 통해 항만 컨테이너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컨테이너를 발명해낸 것은 아니지만, 컨테이너의 보급과 세계화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맬컴 맥린이라는 사람의 인생 여정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구요.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절판되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숨은 공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꼭 구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린 스타우트): 제가 학부생일 때 들었던 “마케팅 원론” 수업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기업의 목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었는데요, 한 학생이 사회적 공헌이 기업의 목표에서 중요하지는 않은지 질문하자, 경영학과 교수님께서 “기업이 돈을 벌지 않으면 왜 존재하죠?”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그 학생은 버벅거리다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구요. 그 때 교수님의 무척 의아한듯 하면서도 전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신께 있어서 기업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고, 그 이외의 다른 목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이 책을 읽은 지금이라면, 한 번 논쟁을 걸어볼 법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서 금과옥조처럼 삼아왔던,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고, 이사회는 이들의 대리인이다”라는 명제가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미국의 파산법에 대한 해석에서 나온 것인데요, 기업을 청산할 때 가장 나중에 남은 잔여 지분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바로 주주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창안하여 주주가 가장 큰 리스크를 지기 때문에 이들이 가장 큰 책임도 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기업의 주인이라는 해석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죠. 내가 죽어서 장기를 기증한다고 해도 의사들이 내 주인은 아닌 것처럼, 파산법에 대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해석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잭 웰치를 선두로 한 이른바 “주주 가치론”이 부상하면서, 마치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인 것처럼 해석하고, 기업은 오로지 주주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 돈을 버는 것만이 지상명제가 되어 버리게 되었죠. 하지만 이러한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의 장기 성장력을 희생시켜서 단기 수익만을 뽑아먹게 만든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다이너마이트로 하는 낚시”라는 참신한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는데요, 호수의 물고기를 많이 잡겠다고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버리면, 그날은 물론 물고기를 많이 잡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투기 자본과 주주 자본주의가 이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죠. 이 책은 이러한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무척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다루고 있는 책으로, 글솜씨가 무척 탁월해서 쉽게 읽히는 점이 장점입니다. 저 역시도 기업의 목적은 장기적인 사명과 이익 추구의 조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주 최우선주의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명과 목적이 무엇이어야 할까 깊게 고민하고자 하는 분들께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탈세의 세계사 : 세금은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오무라 오지로): “죽음과 세금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죠. 하지만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낸다고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군가는 최대한 피할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입니다. 이 책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 있어왔던 탈세를 다룹니다. 탈세가 세계사에서 얼마나 큰 분기점들을 가져왔는지 이야기하는 책인데요, 원천 징수가 나치 독일에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웠고, 미국의 역사 자체가 탈세, 즉 세금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탈세 때문에 국가가 쇠락한 사례도 있구요. 구글을 비롯한 테크 기업들의 탈세 테크닉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조세 피난처가 무척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습니다. 세금과 탈세를 중심으로 한 교양 세계사에 흥미가 있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세금의 흑역사 (마이클 킨): 위의 <탈세의 세계사>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책인데요, 이 책은 세금의 역사를 심도있게 고찰한 책입니다. 문명의 탄생과 함께 세금도 시작되었고, 역사상 모든 세금은 이를 회피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을 낳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의 창문세가 어떻게 창문 없는 영국을 만들었고 건강 보건에 영향을 끼쳤는지, 도로에 맞닿은 집의 면적에 비례한 세금이 어떻게 태국의 로켓 빌딩을 낳았는지 등 세금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들과 혁명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금 징수를 민영화 시켰을 때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를 다루는 사례도 흥미로웠는데요, 고대 근동의 세리가 바로 이런 직업이었죠. 세금의 역사에 대해 폭넓게 알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경영
- 벤처 마인드셋: 세상을 바꾸는 기업은 무엇이 다른가?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이 책은 벤처 캐피탈리스트로부터 직접 듣는 기업의 혁신에 대한 책입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투자할 기업을 택합니다. 즉 “안타는 놓쳐도 괜찮지만, 홈런은 놓쳐서는 안된다”가 그것이죠. 왜냐하면 안타 기업은 잘해야 2-3 배 정도의 이익 거두지만, 홈런은 100배의 이익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이나 구글이 대표적인 예죠. 그래서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혁신 가능성을 평가하며 단 한번의 홈런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의 시점에서, 기업이 어떻게 100배의 혁신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3M이 100년간 수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식스 시그마를 도입하면서 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제록스는 왜 내리막길을 걷고 애플은 성공하게 되었는지, 세쿼이아 캐피탈과 같은 벤처 캐피탈 기업이 왜 “묻어두기” 식으로 장기 투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책으로, 저는 국가도 과학 분야에 대해 이렇게 홈런을 바라보며 골고루 씨를 뿌려서 묻어두는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혁신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스트리밍 이후의 세계 (데이드 헤이스): 미국은 OTT 스트리밍 서비스의 전성시대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훌루, 맥스, 피콕 등 수많은 서비스들이 있는데요, 이들 서비스가 탄생한 배경과 뒷이야기들을 자세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워낙 급격하게 바뀌는 분야여서 2023년 이야기도 거의 10년전 같기는 하지만, 각 회사들의 차별되는 가치와 배경이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It’s Not Luck (더 골 2) (엘리 골드렛): 엘리 골드렛의 전작 를 워낙 감명깊게 읽어서 이 책도 읽어보았는데요, 역시 무척 훌륭한 기업 경영 소설(!) 입니다. 사실 기업 문제 해결 방법을 소설 형태로 만든 책이죠. 이 책에서는 기업의 VP인 주인공 알렉스가 3개의 공장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세 공장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죠. 이 책에서는 알렉스가 “사고 프로세스”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요, 그 과정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UDE(Undesirable Effects,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들을 죽 나열하고, 이들을 하나씩 인과 관계로 연결하고, 그 중간 과정을 채워나가면서 루프나 모순점, 그리고 숨겨진 인과 관계를 파악해나갑니다. 그러면 이 과정을 통해 전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게 되고, 루프를 깨거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되죠. 저 역시도 업무에 한 번 사용해 보았는데,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기업의 의사결정 및 문제 풀이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 (한순구): 왜 유방과 항우가 겨룰 때, 유방의 부하들은 유방을 위해 싸운 반면 항우의 부하들은 항우를 위해 싸우지 않았을까요? 왜 한신은 토사구팽 당했을까요? 왜 한국은 병자호란에서 패했고, 왜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까요? 이 책은 로마, 일본, 중국, 한국을 중심으로 진나라 말기, 삼국시대, 조선시대, 일본의 전국 시대를 다루며 게임 이론 전략의 관점에서 지도자들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되짚어보며 분석하는 책입니다. 무척 훌륭한 책인데요, 기업의 사내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각 개개인의 욕망에 대해 두리뭉실 넘어갔다는 점인데요, 다소 알 수 없다는 투로 이야기했던 “야망”이나 “후사에 대한 집착”은 진화 심리학이나 사회 심리학과 같이 결합해서 읽는다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사로부터 기업 전략에 대한 교훈을 얻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자기 계발
-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 (데이비드 엡스타인): 자신보다 앞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늦었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자녀에게도 조기 교육을 강요하며, 일찍부터 뒤쳐지면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에서는 이것저것 시도하며 탐색하며 시간을 낭비하다가 늦깎이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 고흐가 대표적인 예죠. 고흐는 어렸을 때는 아무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원하던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자퇴하고, 부모에게로 돌아갑니다. 화랑에서의 수습 생활을 하고, 다시 적성에 맞지 않아 부모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기숙학교 교습 교사를 하다가, 보조 목사의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그만두고 부모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일하다가 심지에 서점에서도 일이 맞지 않아 쫒겨나죠. 그리고 다시 목사를 준비하다가 낙방하고, 선교 단체에서 전도사로 일하다가 다시 포기합니다. 이렇게 실패로 가득한 인생을 살았지만, 그 누구도 반 고흐를 실패자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고흐가 마지막 4년동안 남긴 찬란한 그림들은, 지금도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걸작들로 남아있죠. 이 책에서는 고흐처럼 뒤늦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서 성공한 사람들을 다룹니다. 인생에서 성공에 이르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성공한 운동선수, 예술가, 발명가, 과학자 등은 오히려 각 분야에서 정점에 오르는 시점이 상당이 늦은 늦깎이 제네럴리스트죠. 인생의 전반부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시간이 오히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탐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자신이 정말 잘하는 분야를 찾은 사람들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골프 하나만을 두고 죽어라 노력했던 타이거 우즈나 <그릿>과 같이 집념으로 한길만 파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길을 시도해보면서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맞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성공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탐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자신을 더 젊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자신을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며 더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 (짐 콜린스): 저는 보통 리더십 책을 추천하지 않는 편인데요, 평범한 퀄리티의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무척 훌륭한 책입니다. 정상급 운동 코치에게서 직접 자세 교정 코칭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직은 결국 사람이죠. 이 책은 어떻게 올바른 사람을 올바른 자리에 둘 것인지, 위임과 방임의 차이는 무엇인지, 리더십은 왜 학습인지, 동시에 조직 비전을 통해 사명을 공유하며 동기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가 코칭하고 멘토링했던 리더들과 CEO들의 사례들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더 잘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리더나 매니저 직책에 있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에세이
-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책방”을 운영하는 저자의 미스터리와 감동이 담긴 실화 에세이집입니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책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책을 찾아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수집한 생생한 스토리와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꼬마 니콜라>를 배경으로 한 꼬마들의 러브 스토리였습니다. “책이 사람을 만나고, 책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교가 된다”는 점을 잘 드러낸 에세이집으로, 독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기를 꼭 추천합니다. 2권 <헌책방 기담 수집가: 두 번째 상자>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퇴고의 힘 : 그 초고는 쓰레기다 (맷 벨): 글쓰기의 가장 핵심은 퇴고입니다. 스티븐 킹의 경우에는 100번이 넘는 퇴고를 거쳤다고도 하죠. 이 책에서는 퇴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무척 훌륭합니다. 즉 책을 한 번 써서 초고가 완성된 뒤, 퇴고를 통해 완전히 다시 쓰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글이 압축되고 녹아들어가며, 저자 본인도 “변해간다”는 통찰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즉 글쓰기는 글과 저자가 함께 변해가는 과정인 것이죠.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문과가 본 이과 과학 공부라는 점에서 독특했던 책입니다. 유시민의 과거 책들과는 살짝 결을 달리하는 편인데요, 훌륭한 문장력으로 담은 문과의 자기 성찰이라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인문학도가 보았을 때 문과는 여러가지 주장들은 난무하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쉽게 나뉘지 않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해야 할까요. 유시민 본인이 아쉬워했듯, 주장만 있고 틀림을 인정하지 않는 “답답한 바보들”이 너무 많다는 문과의 겸손한 자기고백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반면 이과는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이 결국에는 명확하게 나뉜다는 통찰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가 시도했던 인문학과 과학의 통섭이 쉽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유시민이 책에서 이야기했듯, 연구자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문과가 본 과학이라는 독특한 관점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노한동):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5급 공무원 사무관으로 일하다가 수년 후 회의를 느끼고 그만둔 저자의 경력이 이색적이어서 읽은 책인데요, 무척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은 접하기 힘든 내용인 고위 공무원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무엇이 공무원 조직에서 “가짜 노동”을 만들고 무엇이 비효율을 만드는지 절절히 알 수 있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왜 일을 그만두는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아마도 개인의 비전과 성취를 가로막는 조직 구조 자체의 문제가 컸겠지요. 저자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저도 성과 승진이 연공 서열보다 꼭 우열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조직에는 그 조직에 맞는 인재 운영 철학이 있는 것이고, 안정적인 직업이 주는 장점이 분명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러한 안정성의 그물은 좀 더 위험도가 높은 혁신을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해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지요. 공무원 조직의 문제와 개선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점에서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과학
-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로마 아그라왈): 이 책은 건축물의 구조공학을 다루는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수많은 요소들, 즉 층을 어떻게 쌓아 올릴 것인지, 코어의 역할은 왜 중요한지, 화재로부터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강철 콘크리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와 같은 각종 요소들로부터 시작하여, 저자가 맨 처음으로 설계했던 사장교에 얽힌 감상과 “더 샤드”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공학적 난제들을 풀며 설계하게 되었는지를 건축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점에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책입니다. 건축 엔지니어링과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프리퀄 같은 책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이 가장 먼저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주었던 것인데요, 저도 사물을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것이 인간 본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자연의 동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계통을 분류하는 학문인 분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인데요, 린네라는 천재가 분류학을 창시한 이후, 계통 분류학과 진화적 가지에 의한 분류법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이고 직관적인 분류학이 어떻게 변해나가기 시작했나를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룬 책입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책도 흥미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 먼지 : 거실에서 우주까지, 먼지의 작은 역사 (요제프 셰파흐): 이 책은 “먼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청소해도 언젠가는 다시 쌓이는 집안의 먼지는 어디에서 왔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사막의 모래먼지, 공기중의 미세먼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먼지 구름, 그리고 별들이 탄생을 가져온 성간 먼지와 이들이 어떻게 반데르발스 힘에 의해서 모여들어 별이 되었는지 등등 무척 방대한 스펙트럼으로 먼지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던 교양 도서입니다.
- 아인슈타인의 냉장고 (폴 센): 이 책은 열역학(thermodynamics)을 전문적으로 다룬 교양 과학 서적입니다. 열역학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발전되었고, 볼츠만의 원자 발견이 무척 중요했던 이정표였지만 안타깝게도 사후에나 제대로 인정받게 된 사연,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냉장고도 만들었다는 사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보통 이런 교양 과학 서적들이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다루다가 깊이를 놓치거나, 너무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다가 재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은 열역학이라는 적절한 범위를 택해서 깊이와 교양을 균형있게 갖춘 점이 좋았습니다. 열역학에 관심이 많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이 책은 사람들이 환경을 구하겠다면서 벌인 행동들이 어떤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시카고 운하와 아시아 잉어 사례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해충을 박멸하겠다면서 들여온 아시아 잉어가 하루에 자기 몸무게 절반씩을 먹어치우며 오히러 하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게 되자, 이를 막겠다며 7000억원을 들여 시카고 운하에 전기 장벽 (!)을 설치하는 등의 돈은 많이 들지만 큰 효과는 없는 사례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숟가락으로 강을 퍼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불러온 다른 부작용도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농약을 쓰는 대신 다른 생물을 들여왔다가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진 사례 등이죠. 여하튼 깊이 있게 생각할 부분이 많음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는데요, 제목과 내용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좋았던 책입니다. 생태학 및 교양과학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세포의 노래 (싯다르타 무케르지):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신작으로, 역시 이 책도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책은 세포를 발견하게 된 역사로부터, 가장 최신의 세포 치료 기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데요,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켜서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최신의 암 치료법 방향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책 중간에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들도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점들이 좋았습니다. 교양 생물학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문구의 과학 (와쿠이 요시유키): 연필, 스카치 테이프, 포스트잇, 가위, 색연필 등 각종 문구에 얽힌 과학 및 공학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어떻게 연필로 종이에 글씨를 쓸 수 있는지, 왜 연필로 쓴 글씨는 지우개로 지워지는데 색연필로 쓴 글씨는 지워지지 않는지, 포스트잇은 어떻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지 등등 문구에 얽힌 과학적 지식들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건축
- 못된 건축 (이경훈): 이 책은 대한민국의 대표 건축물들, 그중에서도 DDP나 동십자각 앞의 트윈트리 타워와 같은 최근에 지어진 현대 건축물들의 의의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건축물 자체만을 설명하지 않고, 도시라는 컨텍스트 하에서 이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이유와 존재 의의를 되짚어본다는 책에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책에서는 뉴욕의 시그램 빌딩을 예로 들면서 건축물과 도시 계획의 컨텍스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시그램 빌딩이 만든 “빈 공간”이 도시 전체적인 차원에서 좋은 선택이었는지, 상점가가 연속적으로 쭉 늘어선 스트리트 월(Street wall)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등 건축물을 전체적인 도시 설계 컨텍스트 하에서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시 건축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문화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OTT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영상을 스킵하거나 배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그 빨리 감기에 담긴 인간 행동에 초점을 두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이 책이 재미있게 읽혔던 이유는, 빨리 감기 현상을 단순히 “이렇게 빨리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볍게 넘겨버리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사회적 맥락을 짚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책에서는 크게 3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죠. 첫째는 너무 컨텐츠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백편씩 쏟아져 나오는 컨텐츠들 속에서, 필요한 내용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깊이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시간이 없다는 점입니다. 컨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시간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고, 이때 빨리 감기는 큰 도구가 된다는 점이죠. 셋째는 사회적 압력입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유튜브 요약 영상들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게 된다는 점이 꽤 인상깊었습니다. 책에서는 컨텐츠 제작자들의 의견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의견대로 영상을 만든 사람의 의도에 근거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봐야 한다는 일부 컨텐츠 제작자들의 의견이 해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취향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죠. 저는 영상 시청의 통제권이 개개인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하고, 선택과 빨리 감기는 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왜 모든 나레이션을 자막으로 설명하는 영상이 많아졌는지, 왜 영상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위한 ‘설명충’이 많아졌는지 등의 분석도 있는데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또한 영상의 오픈월드화(게임화)는 꽤 괜찮은 은유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초보와 고수를 모두 배려해서 중심 줄기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해두되, 고수들을 위해 각종 상징들을 숨겨두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튼 꽤 흥미롭게 읽었던 책으로, 영상 미디어의 소비자 패턴에 관심이 많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무릇 2026년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나기를 기원합니다.